|권두 칼럼|

 

≪계간수필≫의 어제와 오늘

 

이태동

 

≪계간수필≫을 발행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필가 동인인 ‘수필 문우회’가 지난 2년에 걸쳐 두 번씩이나 집을 옮겨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련을 겪었다. 물론 이것은 ‘수필 문우회’를 창립하고 이끌어 온 김태길 ․ 허세욱 두 교수가 작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를 느낄 정도로 흔들리게 되었던 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수필 문학의 위기와 함께 오랜 시간을 두고 보이지 않게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수필을 쓰는 우리들 모두가 함께 느끼듯이 수필 장르가 안팎으로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면 수필 문학이 왜 이렇게 위기를 맞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영상매체가 활자 매체를 억압하는데서 오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사색적인 인간의식의 황폐화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휴 홀만 교수가 오늘 날과 같은 “광란적인 시대는 수필 장르가 갖는 분별 있는 마음 자세, 조용함, 그리고 우아함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훌륭한 문학 작품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한국 수필계가 더욱 더 그러하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2천 명에 가까운 수필가들이 신변잡기에 가까운 미숙한 수필을 써서 성스러운 ‘문학의 숲’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수필을 문학 장르로서 창안한 미셸 몽테뉴가 “나 자신이 나의 작품의 토대”라고 말했지만, 그의 글은 개인의 일상적인 사건이나 감정을 낡은 언어로 표현한 넋두리와 같은 한담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한 철학과 인간 본질에 대한 치열한 사색을 담고 있다.

이러한 철학의 빈곤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들의 글에는 영속적인 문학 작품의 기본 요소인 압축의 미학, 명료한 아름다움, 풍요로운 상상력, 언어적인 리듬을 갖춘 문장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찰스 램의 수필에서와 같은 가볍고 편안한 유머와 시적인 감정, 그리고 도시적인 세련된 감수성은 물론 문학적인 취향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슬픈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수필을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짧은 산문으로 이루어진 수필이 문학 작품의 반열에 오르려고 하면 다른 문학 장르를 위한 글쓰기 못지않은 치열한 독서와 사색이 요구된다. 이것뿐만 아니다. 생을 관조(觀照)하고 우주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통해서 얻은 참신한 주제의 발견과 미학적 기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언어적인 힘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고 있는 수필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수필을 여기(餘技)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만일 우리들이 고전이 될 수 있는 수필을 쓸 수 있다면, 몽테뉴의 수필이 셰익스피어 희곡 작품과 비교되는 것처럼, 그것이 지닌 짧은 길이의 압축된 내용 때문에, 읽는데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소설 장르와 경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계간수필≫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수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서정적인 개인 수필을 싣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철학적 사고와 인문학인 지식을 대중화하기 위한 글을 발굴해서 실을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언어의 힘으로 사회의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사회 비판적인 글도 내용이 훌륭하면 얼마든지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 갈 것이다. 과거 ≪사상계≫에서 장준하 선생이 쓴 서문의 위력이 얼마나 컸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수필 문우회’가 광화문 시대를 새로이 열면서 ≪계간수필≫은 허위적인 권위에 안주하는 자세를 과감히 버리고 의식 있는 독자들을 찾아 닫혀진 사랑방 문을 박차고 더 넓은 광장으로 나갈 것이다. 우리는 계속 독자들에게 수채화와 같이 미학적 울림을 주는 글을 찾는 한편, 삶에 숨어있는 진실을 새로이 발견하는 즐거움과 함께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 로고스의 길을 찾는 명쾌한 지적인 글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자들을 위해 황야의 외침과도 같은 소리의 글을 써서 새로운 산문 시대를 열어 갈 것이다. 위기가 새로운 창조를 가져 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인 여러분들의 성원과 협조가 있기를 바란다.

 

<문학평론가 ‧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