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맞는 장난감

 

손봉호

 

우리 딸이 그것들을 ‘아빠의 장난감’이라고 부른다. 70이 훨씬 넘은 노인에게 장난감은 무슨 장난감! 놀이에 대해서 좋은 책을 쓴 하으징가(J. Huizinga)는 사람도 그렇지만 짐승은 특히 어릴 때만 장난을 친다 했다. 사실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 ‘아지’ 돌림 어린 것들을 보면 쓸데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몇 놈이 모이면 저들끼리 싸움놀이도 한다. 늙은 말, 늙은 소는 귀찮다는 듯 그저 바라보기만 하지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 늙어빠진 나 같은 영감이 무슨 장난을 치기에 장난감이 다 있나 할 것이다.

필수적이지도, 심각하지도 않아야 장난이다.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마을 축구는 장난이고 직업축구는 노동이다. 이기면 좋겠지만 저도 괜찮아야 장난이다. 그러나 장난은 무엇보다도 즐거워야 한다. 같은 움직임이라도 힘들면 노동이고 즐거우면 장난이다.

우리 딸이 ‘아빠의 장난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집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빗물 탱크, 그리고 자연수 냉방기다. 모두 에너지 절약과 관계되는 것들이다. 설치하는데 돈이 꽤 많이 들었지만 돈절약도 해 준다.

태양광 발전시설은 8년 전에 설치했는데 한 달에 약 300킬로를 발전하여 전기료를 꽤 많이 깎아준다. 우리나라 전기료가 누진제로 되어 있어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면 전기료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줄어든다. 그러나 8년 전 설치하는데 정부의 보조금을 빼고도 1,300만 원이나 들었으므로 죽을 때까지 제 값을 뺄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그게 장남감인 것은 내가 그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집에서 쓰는 양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므로 계량기가 거꾸로 돈다. 계량기 숫자가 줄어지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아내와 나는 가끔 그걸 들여다본다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빗물 탱크는 지난 해 70만 원이나 들여서 설치했다. 길가에 버린 커다란 플라스틱 물탱크 둘을 주워다가 이층 베란다에 놓았다. 지붕 홈통과 연결해서 지붕에 떨어진 빗물이 탱크에 고이도록 한 것이다. 이층에 있으니까 자연 수압을 이용하여 마당에 있는 나무, 채소에 물을 준다. 주변에 연못도 있고 실개천도 있지만 그 물을 쓰려면 퍼 나르거나 전기모터로 양수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퍼 올려놓으신 물을 낙차를 이용하니 전기가 들지 않는다. 비만 오면 이층에 올라가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들여다보며 대견해 하고, 물이 두 통에 가뜩 차면 마치 뒤주에 쌀이 그득한 것처럼 마음이 흐뭇하다. 죽을 때까지 제값 빼기는 글렀지만 노인 장난감으로 나쁘지 않다.

지난여름을 흥분으로 보내게 한 것은 자연수 냉방장치다. 그 동안 전기 아낀다고 에어컨을 달지 않았더니 한 여름 푹푹 찌는 삼복더위를 선풍기로 견디기는 너무 힘들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환경이니 절약이니 다 때려치우고 에어컨 하나 달까 유혹도 생겼다. 더구나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옷이 축축해지고 책에 곰팡이가 핀다.

그런데 뒤뜰에 언덕 밑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 하나 있는데 그 물이 어찌나 찬지 여름에도 손이 시리다. 그런 물을 지척에 두고는 더워서 쩔쩔 매는 것이 너무 속이 상했다. 그러다가 궁리한 것이 그 물을 집안으로 끌어다가 그 냉기를 좀 빼앗는 것이었다. 냉․난방 기술자를 불러다 팬코일이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샘물을 펌프로 자아올려 통과시켰다. 팬코일이란 본래 더운 물을 통과시키고 바람을 불어 그 열기를 방안으로 불어넣는 기구인데 더운 물 대신 찬물을 통과시킨 것이다. 실험을 해 보았더니 대 성공이었다. 에어컨에는 못 미치나 선풍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그보다도 전기가 에어컨의 30분의 1밖에 들지 않으니 정말 수지맞는 장사였다.

거기다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부수입이 하나 따라왔다. 찬 물이 지나가니까 방안에 있던 습기가 결로되어 물방울로 떨어지는 것이다. 별도의 관을 붙여 그 물을 바깥으로 내보내니 훌륭한 제습기가 되었다. 지난 8년 간 지하실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나서 하는 수 없이 전기를 하마처럼 삼키는 제습기를 돌렸다. 그런데 샘물로도 제습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당장 팬코일 두 대를 더 사서 지하실에 설치하고 집안을 식힌 그 물을 지하실의 두 팬코일로도 통과하게 하였다. 한 번 자아올린 물을 세 번이나 사용하여 그 물이 가진 냉기를 다 이용하는 것이다. 100여만 원이 들었으나 몇 여름 지나면 그것을 다 뽑고도 남을 것 같다.

노랑이로 유명한 우리 부부가 흥분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제습효과가 너무 반가웠다. 냉방기 앞에 의자를 놓고 찬바람을 즐기고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결로되어 모인 물방울을 손가락에 적시며 신기해했다. 작은 것이지만 행복한 여름이었다.

난방공도 신기해했는데 새로운 묘안을 하나 만들어 냈다. 샘물의 위치가 마당 입구보다 더 높기 때문에 입구 쪽으로 물을 빼면 계속해서 물을 인위적으로 자아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펌프로 한 번 물을 자아올려 놓으면 그 다음에는 전기를 꺼도 사이폰의 원리에 의하여 물이 계속 방으로 올라갔다가 밑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펌프를 안 돌리면 전기가 훨씬 더 절약된다. 선풍기 3대 돌리는 전기로 집안과 넓은 지하실에 냉방, 제습을 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버려지는 에너지를 주워다가 쓰게 되었으니 전체적으로는 수지맞는 장난감이다.

요즘 만약 샘물 양이 모자라면 개울물을 공급하는 방법, 바깥 온도가 올라가도 샘물이 안 더워지도록 단열재를 덮는 방법도 궁리하고 있다. 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내년 여름이 몹시 기다려진다.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고신대 석좌교수. 전 동덕여대 총장.

나눔국민운동 대표. 성숙한 사회가꾸기모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