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 향기로운 대화

 

김후란

 

어느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애인을 기다리며 슬픔에 잠겨 있는 그 여인은 설상가상으로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고통 속에 있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 앞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인이 홀연히 돌아온다. 문을 열자 그가 손을 내밀어 안겨준 건 한 다발의 들국화, 그녀는 현기증이 나는 듯 잠시 비틀대다가 꽃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녀를 말없이 껴안는 애인. 쌓였던 슬픔과 원망과 고통이 일시에 무산霧散하는 순간이었다. 꽃향기에 젖어 눈물을 감추는 그녀를 껴안은 애인, 그들은 꽃으로 천만가지 얘기를 전하고 있었다.

만일 목마르게 기다리던 애인이 건네 준 선물이 꽃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이었다면 이때의 분위기는 좀 달랐을 것이다. 감격스런 재회에 한 다발의 꽃으로 연출된 아름다운 장면이 지금껏 나를 사로잡고 있다.

꽃이란 무엇인가.

화려하고 탐스러운 온갖 형태의 꽃에서부터 풀섶에 조그맣게 눈뜨고 있는 이름 모를 풀꽃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의 꽃을 대할 때마다 찬탄을 금할 길 없다.

조물주의 조화가운데 놀랍지 않은 게 없지만 꽃처럼 그냥 반갑고 신묘하고 고마운 게 또 있을까.

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 저마다 다른 얼굴로 귀엽고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꽃, 빛깔이 있고 향기가 있고 분위기가 있어 주고받는 마음에 각별한 뜻이 담기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꽃이 우리네 생활에 끼치는 유형무형의 영향에 대해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우리의 눈과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쁨의 발광체라 말하고 싶다.

꽃이 없는 세상, 꽃 한 송이 없는 방과 쓸쓸한 뜰, 그건 삭막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바람도 피해 갈 것이다.  온종일 음악 한번 듣지 못한 무디어진 귀처럼 눈앞에 꽃을 볼 수 없는 세상은 한마디로 잿빛 겨울하늘처럼 가슴을 무겁게 할 것이다.

“천당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 세상처럼 꽃이 있고 구름이 있고 바람이 있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선배 문인이 말했다. 나 역시 동감이다.

우리에게 삶을 영위케 해주는 직접적인 요소, 이를테면 의식주衣食住의 기본요건이 절대불가결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아니, 먹고 자고 그렇게 목숨은 부지할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라는 고등동물인 것이다.

인간이 동물의 차원을 떠나서 진정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데는 지성과 감성이 있는 때문이며, 정감에 좌우되는 삶의 빛깔과 무늬가 있는 때문이다.

거기에 자연과 예술이 주는 기쁨의 부피가 보태어질 때 비로소 삶의 꿈틀거림이 살아있는 보람에 연결되어진다. 꽃이 우리에게 기여하는 바도 그런 면에서인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 이런 게 있음으로써 살아가는 맛이 있고 살아가는 멋이 있는 법이다. 그런 기쁨을 안겨주는 최상의 선물이야말로 꽃이 아닌가 한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미모의 아내 수로부인水路夫人을 동반하여 강릉태수로 부임해 갈 제 경치가 수려한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게 되었다. 그 곁에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바위산이 있고 아득한 절벽 위에 철쭉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수로부인은 불현듯 그 꽃을 탐내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었으면….”

“그곳은 사람이 오를 수 없는 곳입니다.” 시종들은 엄두를 못 내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절벽에 올라 꽃을 꺾어다가 부인에게 주면서 노래를 불렀다.

 

짙붉은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이 신라의 향가는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를 현대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아름다운 부인의 청에 기꺼이 험준한 바위산에 올라 꽃을 꺾어 바친 노인의 순정이 미소롭기만 하다.

감히 지상의 것으로 볼 수 없는 그 꽃을 사랑스런 여인에게 주고 또 그 꽃을 받아든 수로부인의 기쁨에 빛나는 얼굴을 상상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수로부인이 그때 탐한 것이 바닷속 산호나 진주였더라도 감연히 뛰어들어 구해오려는 용사가 있었을지 모른다.

허나 그 여인은 산호나 진주가 아닌 한갓 타오르는 철쭉꽃을 갖고자 했다.

그 꽃은 며칠이면 아니 몇 시간 뒤에는 시들어 버릴 것이언만 꽃을 받아 안은 순간의 행복감은 다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하고 순수한 것이다. 이 얼마나 사랑스런 여인인가.

흔히 선물이란 분수에 넘치게 무리를 하기 일쑤이고 받는 쪽에서도 듬직한 유형물질일 때 특히 반가워하는 풍조가 없지 않다. 물질만능시대의 병폐일 수 있다.

진정한 마음으로는 아무리 값진 선물도 보내 온 사람의 정이 담겨있지 않은 걸 알게 되면 하찮게 여기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건 뇌물이지 선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호의의 선물일지라도 합당한 명분이 없거나 분수에 넘치는 것일 때 기어코 돌려보내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상대방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거나 다음에 갚아야 할 것을 염려해서 거부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스피노자도 경고하고 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물질에 있지 않고 그 마음에 있는 것이다.

구미 쪽에서는 서로 꽃을 즐겨 선물한다. 그러나 손수 안고 가는 경우보다는 꽃집에 주문해서 배달시키고 직접 들고 간다면 한두 송이로 마음을 전한다.

비교적 형식을 존중하는 우리네 감각으로는 아직도 ‘선물’이란 너무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이제 그 무리하고 거북한 형식의 틀을 깰 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

일반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아름다운 인정의 표현’이라는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값으로 따지기엔 너무도 송구한 꽃을 선물하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 모두 꽃을 선물하는 순수한 가슴을 갖기로 하자. 꽃을 받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가슴을 갖자. 신의 선물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대화를 나누자. 향기로운 침묵의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허락하자.

문을 열었을 때 꽃다발을 안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손님이 되자. 그리하여 신선한 충격과 향기로운 추억을 나누기로 하자.

 

 

시인. <문학의 집 서울> 이사장. 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