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울랜드 하이츠의 하늘

 

南基樹

 

1

 

성당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높푸른 하늘은 사방이 트여 둥글고 시야에 가득했다.

로울랜드 하이츠의 마리아 성당은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이십여 분의 운전 거리이니 지척이나 다름없다. 나는 정년퇴직 후에 이 성당에서 양노엘 신부를 처음 만났다.

양노엘 신부는 마리아 성당을 마지막으로 일생 걸어온 사목의 길에서 나앉았다. 2008년 6월의 일이다. 양노엘 신부가 사목 활동에서 물러앉을 때까지 마지막 삼 년 반 동안 나는 그의 곁에서 성당 일을 돌보았다. 양노엘 신부가 떠난 그 해 말에 나도 마리아 성당을 떠났다.

 

2

 

나는 오늘도 마리아 성당을 찾아 갔다. 하늘과 새소리와 키가 큰 솔 몇 그루와 종려나무 사이로 이웃한 초등학교의 어린아이들 놀이 소리가 반가웠다. 간간이 여객기가 높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이따금 한가롭게 들려오는 경비행기 소리조차 여전했다. 나는 옛날 가운데로 다시 들어온 듯했다.

그러나 고향을 찾는 나그네처럼 나를 그곳으로 이끈 향수는 달랠 길이 없었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몸은 있던 데서 밀려나 있었고, 마음도 떨어져 나와 있었다. 전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말들은 더 이상 내가 바라고 있는 것들을 담아내지 못하리라는 자각이 뒤따랐다. 나는 그때 새로운 어떤 것을 마음속에서 그려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씩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네 시가 지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묵주의 기도도 끝이 난 뒤였다. 교우 대여섯이 수화를 익히고 있는 옛 도서실을 무심히 지나쳐 주차장을 벗어나는데 연고 없이 고향은 더 이상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향은 저쪽에 있다는 생각이나 바늘구멍 저쪽이 고향일 것이라는 생각은 성당에 들렀다가 돌아갈 때면 지녀보게 되는 여러 생각들, 이해는 쉽지 않으나 심상이 아름다운 생각들 가운데 하나였다.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브라함이 어린 아들 이삭에게 번제물을 사를 나무를 지우고 함께 사흘 길을 걷는다. 아들을 바칠 곳 모리야 땅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사를 그곳을 멀리 바라보고 있다. 믿음으로 사흘 걸음을 한 아브라함에게는 저쪽에 간절한 이루어짐이 있다. 부름을 따르는 이런 모습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품어보았던 것인지 고향을 두고 암시처럼 어려 있는 음영이 알지 못하고 흘려보낸 세월의 모습들 가운데서 언뜻번뜻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생각은 성당 주변을 나돌기 시작했다. 피어나고 이우는 세월은 안과 밖을 두루마리처럼 아울러 놓는다. 스스로를 체험하고,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맺는 관계 안에서 자기를 낸 존재에게로 돌아간다. 이런 생각들이 잔상들처럼 늘어섰고, 도막진 세월이 나굴었다. 어렸던 시절 동네 어귀 골목길 놀이 동무들, 남극의 세종기지 부두 앞 고래가 물을 뿜어 올리던 장면, 제주도 북촌의 해변 거무튀튀한 바위들, 태풍 속 북촌대가北村大家에 들이날리던 물보라들, 마리아 성당에서 만난 여러 존재들―성경의 여러 장면들, 순교자들의 삶, 성인들의 일화, 사제와 수도자들의 생활…. 마음속의 이러한 잔상들에는 대체로 그 무렵에 마음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더불어 어리어 있기 마련이다. 멀고, 어렴풋하고, 깊이 잠겨 있지만, 지금을 이루어 온 것들이다.

마리아 성당에서 양노엘 신부를 만나 귀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로울랜드 하이츠는 나에게는 볍씨를 뿌려 모를 내는 모판 같은 곳이었다.

 

3

 

아침에 아내가 옷 수선할 것과 세탁물 몇 가지를 챙겨 들고 문을 나섰다. 로울랜드 하이츠에는 옷을 손질하는 솜씨가 남다른 옷 수선소가 있다. 아내는 옷을 손볼 일이 생기면 이 수선소의 아주머니를 찾는다. 로울랜드 하이츠를 다녀오겠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불현듯 지난날들이 떠올라서 아내를 따라 나섰다.

옷 수선 집과 세탁소에 옷가지를 맡기고 나서 우리는 자주 갔던 음식점을 찾아갔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동안 로울랜드 하이츠에서 살던 때가 화제가 되어서 그때의 느낌을 서로 주고받았다.

“여기서는 늘 하늘이 보였었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언제나 넓게 느껴졌었어. 사방으로 둥그렇고, 높직하고, 먼 하늘이었거든.”

엘에이 공항으로 벋어 있는 105번 프리웨이에 올라서면 공항에 가까워지면서 사방이 물러나며 멀리 빌딩들과 산자락이 지평선을 이루고 머리 위로는 드높이 공간이 열리고는 했다. 그렇게 열리는 공간의 의식에 하늘의 생각은 따르지 않았다. 사방이 탁 트였다는 느낌 그 정도였다.

“그래, 공항으로 가는 때면 거기서는 하늘을 보지 않았어. 하늘이 의식 가운데에 없었으니까. 하늘을 찾은 적이 없었던 것이지.”

로울랜드 하이츠에서 하늘이 보였던 것은, 성당 일을 돌보며 지냈던 마음의 한 상태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4

 

60번 프리웨이에서 남쪽으로 패스파인더 애비뉴 위쪽의 능선까지 느린 비탈의 중턱쯤에 있는 마리아 성당에서는, 앞 현관에서 동쪽을 향하거나 뒷마당 주차장에서 서쪽을 올려다보거나, 북쪽으로 멀리 산 가브리엘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남쪽으로 로울랜드 하이츠 능선 너머로, 막힘이 없는 하늘은 늘 평화로운 느낌이어서 그 푸른빛에 아련히 마음을 빼앗기고는 했었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들이 떠나고 나면 성당 주변은 본디의 고요로 되돌아왔다. 신심 단체의 모임이나, 성경공부 반의 활동이 있는 날이라 해도 교우들은 조용하고 목소리는 대체로 나직했다. 늘 고요한 느낌이 흐르고 있었다. 사무실의 일에서 머리를 식힐 겸 바깥으로 나오는 때면 사방으로 넓게 틔어 있는 느낌이 마음 가득히 밀려들었다. 그 느낌을 따라 눈길을 주면 생각은 언제나 하늘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땅위에서 찾고 있는 여러 의미들이 하늘의 이쪽저쪽에서 언뜻언뜻 보일 듯도 했었다. 이런 버릇에서 성당에는 넓은 하늘이 위로 열려 있다는 느낌이 깊이 따라다니게 되었나 싶다.

성당의 뒷마당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아침나절, 한낮, 저녁 때 할 것 없이 한결같은 낙樂이었다. 높이 나는 여객기를 하얀 비행운이 따르고 있었다. 길게 드리운 꿈의 표지 같았다. 여객기가 지나가고 나면 점점이 부푸는 비행운은 엷게 풀리면서 한쪽으로 밀리는 듯 느릿하게 휘었고, 푸르스름하게 하늘빛을 흐리며 높은 구름이 되었다. 그 뒤로 하늘빛은 심해처럼 깊이를 더해 갔다. 그런 모양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고요한 하늘이 아득히 시간의 바다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시간의 잔상이 비행운처럼 마음속에 뒤따르고 지나가는 것들의 여운으로 배어들었다. 아른거리는 하늘의 너울이, 그 고요함이 참으로 좋았다. 늦은 오후가 되면 여객기들이 하나씩, 둘씩, 어떤 때는 대여섯 대가 동편 하늘에서 신호등을 반짝이며 나타났다. 부싯돌을 치듯 맑고 강렬한 불꽃이 하늘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하루가 빛을 잃어가는 저녁나절이면 높은 하늘에 아직도 남아 있는 햇빛 가운데를 멀리 날고 있는 여객기들이 하얀 점이 되어 반짝였다. 가마득히 먼 곳에서 소리 없는 비행운이 흰빛을 늘이며 황혼이 깃들은 하늘가를 가물가물 수실처럼 장식했다.

낮이 긴 여름철 저녁에 미사가 끝나서 성당 뒷마당 주차장으로 나오는 때면, 서쪽 하늘에는 초승달이 저녁별을 이웃하여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처음에는 엷은 붓질의 흰 자취처럼 희미하던 것이 며칠 사이로 배를 불려서 오이씨처럼 드러났다. 낫 끝같이 예리하게 삐친 흰 빛깔이 밤하늘 아래 시가지의 야광 불빛 위로 영롱하게 떠오르고, 저녁별이 두엇 그 주위에 보석처럼 박혀서 밤마다 위치를 옮겨가며 빛나는 때면, 마음은 저도 모르게 찬탄 가운데로 모아지고는 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 신비로운 하늘의 운행을 알아 볼 수 있는 마음을 바라게 하고,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아직도 하루 더 살아 있다는 것―이런 현상들이 달마다 하늘과 땅 위, 마음 안팎에서 되풀이하였다.

나는 성당 뒷마당에서 이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랫동안 서 있고는 했다. 이런 나를 양노엘 신부는 여러 번 보았을 터이지만, 그는 나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수필가. 전 한국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