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에 관하여

 

엄정식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우선 내가 지금 한가롭게 거닐고 있거나 소를 몰고 논두렁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운전은 내 정신적인 자세나 태도가 자동차를 운전하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책을 할 때처럼 생각에 잠겨있거나 소를 몰 때처럼 옆을 두리번거리면서 걸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자동차는 현대 문명이 낳은 최첨단의 교통수단이다. 운전을 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부 사항을 모두 다 알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원리는 알아야 한다. 출발과 정지는 물론이고 주차하는 방식이나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 차선을 지키는 습관, 앞차와 유지해야 하는 적절한 안전거리, 그리고 자주 추월해봐야 별로 앞서가지도 못한다는 것 등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가 제대로 운전을 하고 있더라도 다른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불의의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늘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운전은 인간관계에 대한 도덕적 수양과 삶의 지혜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볼 수 있다.

운전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유의해야 할 것은 신호등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교통 신호체계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국제적으로 공통된 체계가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빨간 신호등에 대한 대응방식이다. 원래 이 신호등은 어떤 경우에라도 무조건 정지하라는 표시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면허시험을 치를 때 이 신호등 준수를 매우 엄격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이 낙방을 시킨다. 실제 상황에서 이 신호등을 위반할 경우 대형 사고가 날 수 있어 생명을 포함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이 신호를 대강 지키거나 어기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신호등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신호등은 사람들끼리 약속해서 만든 것이니까 사람이 먼저 있는 것이지 신호등이 먼저 있고 사람이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상당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호등은 신호등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다면 신호등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빨간 정지 신호등은 달려오는 차가 주위에서 안보이면 지나가도 된다는 표시가 아니다. 그 신호등 앞에서는 항상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엄격한 신호이기 때문에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신호를 왜 철저하게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는 걸까? 혹시 소를 한 마리 몰고 논두렁을 한가하게 거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기야 논두렁에는 신호등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니면 차를 운전하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차를 ‘운전’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차를 움직이게 한다거나 속도를 내거나 멈추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호를 어기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나 온전한 의미로 운전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급정거를 하거나 과속을 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인 것이다.

신호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과속을 하거나 난폭하게 운전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민족성이나 국적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너무 서둘러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습성이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성급히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욕 때문에 효율성과 성과 위주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태도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상정할 수도 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소를 모는 정신 자세를 가지고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좋게 해석하면 소를 몰 때처럼 ‘정다운’ 혹은 ‘인간적인’ 태도로 차를 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동차는 소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자동차 외에도 전철이나 기차, 비행기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전기와 전자 기기 등 많은 문명의 이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최첨단의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어떠한 태도로 임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 운전을 제대로 하려면 자동차와 어느 정도 일체감을 가져야 하듯이 이 시대를 바람직하게 살아가려면 과학기술이 낳은 각종 문명의 이기들에 익숙해지는 것은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과학정신 혹은 과학적 합리성을 어느 정도 터득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벌써 여러 해 전 일이다. KBS 제1방송국에서 ‘명사 특강’이라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전화로 받았다. 토론을 포함해서 한 시간이 배당되어 있고 주제는 철학적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정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거절의 뜻을 비쳤다. 그쪽에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두 가지 이유를 대었다. 첫째, 나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사’가 아니고, 둘째, 방송 매체를 통해서 철학 강의를 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담당자는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내가 명사라는 것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어려운 철학 강의가 아니라 편안하게 일반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꼭 출연을 해 달라고 간곡하게 청했다. 그 정중한 태도에 약간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지 나는 결국 응하고 말았다.

마침내 방송에 출연해서 강의가 끝나고 질의와 응답의 순서가 이어졌다.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물었다.

“교수님, 철학을 아주 쉽게 한마디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운전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 하였다.

“철학은 운전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령 초보 운전자는 빨강 신호등 바로 앞에서 급히 정지 페달을 밟지요. 그러한 경우 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숙련된 운전자는 눈앞으로 다가오는 신호등을 미리 보면서 천천히 페달을 밟습니다. 좀 더 숙련된 운전자라면 지금 신호등 앞의 신호등도 내다보며 미리 준비를 하지요. 그런데 정말로 숙달된 운전자는 그 지역의 신호 체계를 파악하고 있답니다. 철학은 삶의 전반에 걸쳐서 신호 체계를 파악하는 지적 탐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를 포함하여 모든 청중들이 긴장한 자세로 숨을 죽이며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조금 누그려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신호 체계 자체에 너무 신경을 집중하면 눈앞의 신호등이 잘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깊이, 멀리 보려다가 철학자도 그만 신호등을 가끔 위반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론과 현실에는 역시 어쩔 수 없는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한 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운전은 우리에게 진지한 철학적 지혜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해 마음 편히 웃어넘길 수 있는 삶의 여유도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서강대 명예교수

수필집 ≪당진일기≫ ≪행복한 철학자≫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