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피타고라스

 

김애양

 

먹성이 워낙 좋은 나는 삽시간에 많은 음식을 해치우는 장기가 있다. 입맛을 잃었던 누구라도 나와 함께 먹으면 저절로 과식하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무리 시장해도 식구들이 나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함께 저녁상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농약 같은 건 개의치 않고 과일은 껍질 채 씨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울 뿐 아니라 생선은 뼈도 추리지 않고 눈알까지 파먹거나 털이 붙은 돼지비계를 특히 좋아라하며 아구아구 씹곤 한다.

그런 내게도 싫은 음식이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콩이다. 콩만 먹으면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운 것이 마치 알약 같았다. 비단 콩 뿐 만이 아니라 두부나 비지처럼 콩을 원료로 한 건 죄다 싫었다. 밥에서 콩을 골라낸다든지 짜장면 위를 장식한 완두콩 다섯 개를 빼내는 것은 예삿일인데 그런 나의 젓가락질을 눈여겨본 사람들이 핀잔을 주었다. 콩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줄 모르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가 피타고라스 학파이거든요.”라고 으스대곤 했다. 피타고라스가 콩을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소리를 주워듣고 써먹는 수작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져 “피타고라스가 왜요? 피타고라스가 뭐라 그랬는데요?” 라고 묻곤 했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32년경 남부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던 인물로서 저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이다. 또한 ‘만물의 근원은 수(數)’라고 주장한 철학자이다. 그는 우주의 질서인 ‘코스모스’를 수학적 탐구로 밝혀 영혼을 정화시키고자 하는 종교를 창시했다. 주요 교리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것과 콩을 먹는 것은 죄라는 가르침이다.

피타고라스가 콩을 금지 한 연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콩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배가 더부룩해져 영혼의 평화를 깨뜨린다는 설명도 있고, 콩깍지를 펼쳐놓으면 지옥의 문인 ‘하데스의 문’과 똑같기 때문에 불길하다는 이유도 있다. 또 콩의 생김새가 남성의 음낭과 같기 때문에 금욕적인 교훈이란 설도 있다. 그밖에도 콩을 으깨어 햇빛아래 놓으면 정액 냄새가 난다거나 발생기원이 인간과 같은 콩을 먹는 것은 식인 행위라는 등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가장 그럴싸한 설명은 ‘잠두 중독증’이다. 잠두콩이 적혈구에 작용하여 급성 용혈성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병을 말한다. 신생아의 경우 콩을 먹은 엄마의 젖만 빨아도 죽고 마는 이 병은 지중해 연안의 남자아이에게 흔하다. 그렇다면 피타고라스에겐 콩이 일종의 독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타고라스 교단의 규칙 중에는 ‘흰 닭을 건드리지 말라’, ‘빵을 쪼개어 나누지 말라’, ‘큰 길로 다니지 말라’, ‘불빛 옆에서 거울을 보지 말라’ 따위의 이상한 교리가 15가지나 되므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비주의처럼 보인다.

사실 숫자 개념이 지독히 없고 그 무엇보다 수학 성적이 형편없던 내가 피타고라스를 운운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피타고라스 교파를 빙자하여 콩을 피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피타고라스와 결별할 일이 생겼다. 지난여름 감기치레가 3개월간 이어지는 남편에게 건강 검진을 시켜봤더니 혈당수치가 높게 나왔다. 뿐만 아니라 한집에 사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명백한 당뇨병 환자로 드러났다.

당뇨환자들이 마음 놓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건 오직 콩과 미역뿐이라는데 주부인 내가 콩을 싫어한 탓에 식구들이 모두 병에 걸린 것 같아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콩을 갈면 맷돌 곁에 앉아 구멍에다 삶은 콩을 집어넣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맷돌은 이제 없지만 그보다 간편하게 콩물이 쏟아져 나오는 믹서가 큰 도움을 주었다.

콩국수에서부터 콩비지, 콩자반, 두부 졸임, 순두부찌개, 유부….

식탁 위에 이런 반찬만 올리게 되자 나도 어쩔 수 없이 콩에다 입을 대보았다. 정을 붙이니 콩도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고소하고 맛있다. 게다가 콩에는 천연 여성호르몬이 잔뜩 들었다니 그 누구보다 내게 고마운 음식이다. 여태 잠두중독증 환자이기라도 한 듯 콩을 멀리했던 내가 두부 한 모 후딱 해치우며 무색함을 느낀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면 나의 편식이란 참 호사스러운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오직 생각에서 비롯된 분별일 뿐.

피타고라스여 안녕. 이제부터 나는 콩 전도사이다.

 

 

≪책과 인생≫(’98)으로 등단, 제4회 남촌 문학상 수상(2008년)

작품집≪초대≫ ≪의사로 산다는 것≫

은혜산부인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