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성씨는 30만 가지

 

최일남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의 번번이 돌연한 언행을, 비거리와 착지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타원형 럭비공에 빗대는 수가 있다. 이런 비유는 그러나 특정인의 성벽을 형용하는 객관적 관용어로만 쓰이는 게 아닐 것이다. 나만 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의 변덕이 유난하다. 지향 없이 던지는 럭비공이 일상에 참 많다.

책을 읽다가 어떤 대목에 공연히 집착하여 눈앞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헤매기 일쑤다. 낭비한 시간이 이만저만 아깝거늘, 때로는 거기서 군불에 밥 짓는 재미를 느껴 아주 똬리를 틀기 쉽다. 일본 야구 중계를 보다 말고 그들의 성씨를 섭렵하는 시간이 가령 그렇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볼거리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야구는 구경꾼에게도 분수껏 감독이나 코치의 절묘한 지략을 요구하는, 요새 유행어로 치면 쌍방향 통섭(通涉)의 흥미를 덤으로 앵긴다.

하여 웬만한 직장인들이 조금은 고단하거나 낙장불입 같은 하루를 수습할 즈음에 나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챙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창밖에 어른대는 쇠잔한 황혼을 힐긋거리며 이승엽 박찬호의 오릭스 버팔로스 팀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국내 야구의 페넌트레이스에도 물론 큰 경기 위주로 눈을 돌리되 일본 쪽의 별미에 나우 끌린다.

날이면 날마다 몰입하지 않는다. 지루하면 선수들의 표정이나 살피며 농땡이를 친다. 하다가 얼마 전에는 오릭스 4번 타자 ‘T-오카다’의 별난 이름이 궁금했다. 작년엔 홈런왕을 꿰차더니 올해는 초반부터 영 죽을 쑤다 못해 잠시 2군으로 내려갔던 외야수인데 뒤늦게 솜씨를 되찾아 장타를 자주 날렸다. 본명인 오카다 다카히로(岡田貴弘)의 영어 머릿글자 T를 따 자신의 애칭으로 삼은 값을 했다.

팀의 감독 성씨 또한 오카다(岡田彰布)이고 다른 팀 선수 중에도 같은 성이 몇몇 있지만 오카다는 그쪽 사회의 대성(大姓) 축에 못 든다.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스즈키, 사토, 다나카, 야마모토, 와다나베 쯤 되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일본사람의 성은 모두 얼마나 될까. 어느 자리에서 한번 인용한 까닭에 거듭 써먹기 무안하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코리아 워크스 지음. 2009년 판)이라는 소책자에 따르면 30만 안팎을 헤아린다. 그나마 추산일 따름이다. 정확한 건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한국 성은 274가지.)

굉장하구나 싶은데 일본에서 ‘묘지’(苗字)라고도 일컫는 별별 성의 독법이 무척 까다롭다. ≪일본 인명 읽기 사전≫(日外 아소시에이트編, 그린비 일본어연구실 옮김)의 감수자 고수만(高秀晩) 교수도 서문에서 밝혔다. “일본인 자신들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복잡하다”고 말이다. 그것은 한자를 빌어다 쓰고 있는 일본인들이 한자를 소리(音)와 뜻(訓)으로 함께 읽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따라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계각층의 성(4만2천)과 이름(7만2천)을 두 부분으로 나눠 수록한 이 사전은 대강대강 훑어보기조차 벅찰 지경이다. 그러나 희한한 한자의 나열이 거꾸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여 가독성(可讀性)을 높여 준달까, 그것 자체로 어떤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를테면 보자. 한 일(一), 두 이(二), 석 삼(三)으로 시작하여 열 십(十) 자에 이르도록, 단순한 수사(數詞)를 넣어 만든 성이 당장 부지기수였다. 여섯 육(六)만 빼고 다 있다. ‘일가’(一家·잇케) ‘일각’(一角·잇가쿠)식으로 나가는 一자 돌림이 2백여 개다. ‘삼계’(三階·미카이), 삼귀(三鬼·미키) 등등의 三자 돌림은 3백여 개로 훨씬 많다. 십자 성 가운데에는 ‘십삼’(十三·쥬상, 또는 도미), ‘십오야’(十五夜·모찌즈끼)도 보인다.

그밖에 숱한 기기묘묘한 성은 굳이 옮겨 무엇하리. 예전의 우리 형편 역시 큰소리칠 것이 못 되는 마당에 일일이 흠잡는 결례를 삼가려니와, 일본인들이 저마다 제 이름을 지니게 된 역사는 실상 짧다. 서민들의 대부분은 문자화 이전의 허드레 호칭으로만 통했던 것이다. 명치유신 이후에야 평민도 성을 갖도록 관이 먼저 서둘러 억지 작명으로 법석을 떨었다. 한 어촌에서는 물고기 이름으로 성을 삼을 만큼.

사정은 다르지만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을 얼핏 떠올리게 만든다. 유난히 씨족 개념이 강고했던 민족에겐 하물며 참기 어려웠다. 원천적 저항이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감당해야 할 그들의 가혹한 막바지 동화(同化) 정책과 생필품 배급이나 자녀의 교육 취직 등에 미칠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토대학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수의 저서 ≪창씨개명≫(이와나미서점·2008년)은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서술한 연구서이다. ‘일본의 조선 지배 속에서’를 부제로 단 조선근대사 및 동아시아관계사 전공 학자의 광범한 자료 동원이 돋보이는데, 그중에 특이한 것이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들고 나왔다는 반대 의견이다. 새삼스럽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일본 내지(內地)와 총독부 주변의 일부 유력자들이 식민지 조선인들의 창씨개명을 마뜩찮게 여긴 이유는 간단했다. 그 때문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구별이나 차이가 안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 반론의 핵심이었다. 엉뚱한 선민의식이 실로 가소롭되 당시엔 잘 몰랐던 측면이다.

이미 실토한대로 ‘안방 야구’ 이야기가 주절주절 가외의 화제로 번져 멋쩍지만 가깝고 먼 일본은 아무튼 옛날이다. 사람과 문물이 생활 속에 서로 넘친다. 세상에서 제일 명함 돌리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생소한 이름을 입 밖에 낼 기회가 그토록 많아진 셈이다.

뿐인가. 다인종 다문화현상의 진전과 함께 우리 사회에는 또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는 소리가 긍정적으로 드높다. 동남아 여성들이 농촌 총각과 결혼해서 낳은 2세 어린이들을 ‘코시안’(Korean과 Asian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는 내력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국인으로 귀화하는 외국인들이 갈수록 는다. 자기 나라에서 쓰던 성을 그대로 쓰는가 하면 내친 김에 한국식으로 바꾸는 이 또한 적잖다. 독일에서 귀화한 이참(李參·옛 이름 이한우)씨는 독일 이씨(李氏)의 시조를 자처한다. 미국계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씨는 부산 영도를 본관으로 정해, 영도 하(河) 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런 판세 속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우리네 성씨는 끄떡없다. 아니다. 부모 성을 각각 내려 받아 만든 창씨가 어느덧 보통이다. 아이 이름을 한자 대신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는 경향이 매우 자연스럽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윤빛가람(경남FC 미드필더)의 발재간을 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머금는 연유다.

 

 

≪현대문학≫으로 등단(56년).

소설집 ≪서울사람들≫ ≪석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