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빵집’ 앞 풍경

 

신현복

 

우리 집 골목을 나와서 개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빵집이 있었다. 정류장 바로 앞에는 큰 약국이 있었고 빵집 좌우로는 라디오방과 만화가게가 있었는데, 라디오 방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제니스라디오가 골동품처럼 앉아 있었다. 마른 몸집의 키가 큰 만화가게 아저씨는 라디오 방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감상하는 듯 하얗고 긴 얼굴을 치켜들고 동그랗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가게 앞에 서 있곤 했는데.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가게 앞에 그렇게 어정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지도 않고 왜 밖에만 나와 있는 것일까 하며 궁금해 하곤 했었다. 유리문에 붙어있던 신간 만화의 광고, ‘엄마 찾아 삼 만리’ ‘오동추’ ‘유정천리’ 가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때 흘러나오던 유행가가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였던가.

학교에서 오전반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가방을 마루에 내동댕이치고, 엄마가 부를 새라 되돌아서 만화가게로 달려갈 때가 많았다. 만화책의 일정한 간격의 공간에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이 신기하면서도 동화책과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겨우 앉을 수 있게 기다랗게 걸쳐놓은 좁은 널빤지에 작은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서 만화책을 몇 권 보고 나오면 어느덧 해가 저물고 거리는 귀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아마 이 계절쯤이지 않았을까, 만화가게를 나오면 뺨에 와 닿았던 조금은 외로운 듯한 스산한 저녁바람.

만화가게와 나란히 있는 빵집 진열장에 있는 빵들은 저녁시간의 나를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 곳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 적은 없었지만, 유리 진열장에 이마를 대고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왠지 해질녘의 스산함이 조금은 넉넉해지는 것 같았다. 종류도 많지 않았을 팥빵, 크림빵, 노란 카스테라 등을 지금처럼 풍족하게 먹을 수 없었기에 언젠가는 먹을 수 있겠지 하는, 구멍가게에서 알사탕을 사먹는 것과는 또 다른 기대를 하면서.

그 중에서도 제일 마음이 가는 것이 있었는데 먹고 싶다기보다는 궁금하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주먹만한 크기의 덩어리가 나란히 붙어서 노릇하고 반지르르한 윗부분의 껍질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그리고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궁금함을 알기라도 한 듯 그 날이 내 생일이라고 기억되는데, 할머니께서 그 빵을 사다 주신 것이다. 어쩌면 그 빵집 유리 진열장에 이마를 맞대고 보는 나의 모습을 보셨을지도, 아니면 모처럼 손녀의 생일 무렵에 다니러 오셔서 그 때는 흔하지 않았던 빵을 선물로 사 오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식빵이라는 이름의 그 노릇하고 볼록한 한 덩어리를 살그머니 떼어 보았다. 그 안에는 팥도 없었고 크림도 없는, 폭신폭신하고 하얀 속살만이 곱게 결을 세우고 채워져 있었다. 계란 냄새 같기도 하고 우유가루 냄새 같기도 하고 아니면 엄마가 찐빵 만들 때 넣는 소다 냄새 비슷한 새콤한 향긋함이 은근히 번져 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조각 떼어서 입에 넣었을 때의 순하게 녹는 것 같은 부드러움을 그 때 처음 맛보았던 것이다,

 

아파트에서 일반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빵집이 멀리 있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거리에 있는 위치이긴 하지만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빵집이라기에 그나마 거리상의 불편함이 상쇄되는 기분으로 자주 들르곤 한다.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류가 많지만 나는 지금도 식빵을 자주 사는데, 먹기 좋게 썰어진 것이 아니라 덩어리째로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중국 음식 등 요리를 많이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베이커리를 배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손수 만들 수 있어서 흐뭇했고, 아이들도 엄마가 그렇게 만든 것을 신기해하며 맛있게 먹곤 했다. 다양한 모양을 빚어서 오븐에서 구워 나오는 향긋한 쿠키를 보며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비교적 손쉬운 파운드케이크, 호두를 잘게 부수어서 버터와 설탕과 계란을 녹여서 틀에다 부어서 구워내는 피칸 파이, 케이크는 생크림으로 위를 장식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든 것이 식빵이었다. 우유와 계란을 풀어서 이스트를 녹인 물로 적당히 반죽을 해서 발효시키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알맞은 온도로 구워 냈을 때 부드럽고 고운 결이 형성되는 식빵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 만들어낸 식빵은 다른 어느 것 보다 마음이 가고 맛이 있었다. 마침 친정어머니께서 오셨을 때 오븐에서 갓 구워낸 따뜻한 식빵을 드시면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든 식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구나, 어쩌면 이렇게 잘 만들었니.”

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는 커피에 프림을 타서 마시는 것을 많이들 좋아했는데, 끓는 물에 커피, 프림, 설탕을 타서 식빵을 담궈서 먹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식빵의 부드러운 쪽이 커피에 닿자마자 소리 없이 스며드는 무한한 여유, 그리고 혀에 촉촉하게 와 닿는 따뜻함과 달콤함을 기숙사 친구들과 즐기곤 했지만, 문득문득 스산했던 해질녘의 빵집 앞에 서 있던 어린 날의 내가 서 있곤 했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볼록한 한 부분 위를 가볍게 잡아서 떼어내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나뉘어지는 선선함, 속살의 부드러움과 연하게 스치는 우유와 계란과 버터가 숨어있는 향긋함, 그리고 무한히 스며들 것 같은 속살의 깊이. 빵의 결을 따라 얄팍하게 뜯어내서 혀에 닿았을 때의 그 부드러움.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빵집 출입문으로 들어가 진열된 여러 가지의 빵을 둘러본다.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빵이 넓은 매장에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진열이 잘 되어있다. 건물 앞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고 실내조명이 밝아서 이제는 이마를 맞대고 들여다보지 않아도 매장의 모든 것이 다 보인다. 아니 이제는 저절로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있다.

식빵을 사 들고 땅거미 드리운 길을 걸으며 그 때 그 빵집 진열장에 이마를 대고 있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생일에 할머니께서 사 주시던 식빵의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 그리고 그 좁은 공간을 무던히도 벗어나고 싶어 했을 만화가게 아저씨는 그 때 어떤 비상(飛翔)을 꿈꾸며 그렇게 담배를 피워 대며 서있었을까. 라디오 방 먼지 쌓인 제니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를 난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데.

 

 

≪한국수필≫로 등단(91년)

수필집≪초록에 관한 기억≫ ≪나의 사랑하는 금붕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