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 외교

 

김종록

 

1975년 여름, 내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사 대리를 맡고 있던 때였다. 그 무렵 우리나라 외교는 온통 제 30차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 초점이 가 있어,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결정 날 것인가에 외교 역량을 쏟아 붓고 있었다. 즉 남북한이 각각 상반된 한반도 통일방안을 제출하였는데, 총회에서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우리 측 안은 유엔 감시하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에 의한 통일, 북한 측 안은 외군 철수를 전제로 한 남북한 연방제에 의한 통일이었다. 그때는 이 문제가 우리 외교관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주재하는 나라가 유엔에서 어느 안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외교관 개개인의 근무 성적과 앞으로의 거취와 승진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어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물론 내가 근무하던 중앙아프리카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재국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찬성토록 하고, 가능하면 우리 안의 공동 제안국이 되도록 적극 교섭하라는 훈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북한의 방해공작 또한 치열하여 이 문제를 풀어가려면 특단의 비상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게 되었다. 그 비상수단이란 다름 아닌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대통령을 직접 면담하고, 설득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신임이 두터운 내각 관방장을 접촉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다행히 외상은 그간 부단히 접촉하여, 어느 정도 의사를 전달하였으나 북한의 입김에 이미 쏘였는지,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확답을 하지 않아 최후 수단을 강구치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내가 살던 바로 이웃에 그 나라 최대 일간지 사장인 R씨가 살고 있었다. 저녁이면 종종 부부 동반하여 집에 들러 술친구가 되곤 하였는데, 하루는 어디서 들었는지 인삼이 남성 정력 강장에 좋다면서 구해달라고 하였다. 아마 중국대사에게서 들은 듯하였다. 그래서 인삼차를 몇 봉지 주었더니 효험이 대단하다면서 다량 구입하겠다고 나섰다. 인삼은 동양의 신비한 영약으로 귀한 것이라 그렇게 많이는 구할 수가 없으나 필요한 만큼만 주겠다며 일부러 아주 귀한 보석 다루듯이 조금씩만 주곤 하였더니, 나중에는 대단한 인삼애호가가 되었다. 그 R씨가 나에게 인삼을 이용하면 대통령과 관방장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아이디어를 주었다.

우선 그 일간지에 인삼에 관한 특집기사를 게재키로 하였다. 지금은 유럽이나 아프리카에도 한국 식료품점이 도처에 있고 하여 인삼 구하기가 쉬워졌으나 70년대인 당시만 해도 아직 파리에도 한국음식점이나 식품점이 문을 열기 전이라 인삼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였다. 우선 인삼 홍보전을 펴 관심을 끌기로 작정하고, 서울로부터 보내온 자료들을 며칠이 걸려 그 나라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그 유력지에 3일간 광고가 아닌 시리즈 기사 형식의 특집으로 연재하였다. 기사까지 곁들었으니 그 효과는 대단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효과는 다음날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삼을 구할 수 없느냐는 많은 사람들의 문의가 우리대사관으로 쇄도하였다.

며칠 후 내각관방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물론 관방장은 체면상 본심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추측컨대 예의 그 인삼 때문에 만나자는 것쯤은 대뜸 알 수 있었다. 나는 즉각 홍삼근과 인삼차 두 상자를 챙겨들고 그 관방장을 면담하여, 인삼의 신비로움과 효능을 설명하였다. 내친 김에 가져온 인삼을 선물하겠다고 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기회에 나는 가을 유엔총회에서 주재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우리나라 입장을 적극 지지해 줄 것과 가능하면 우리안의 공동제안국이 되어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하여 긍정적인 답을 들었다.

그 후 그의 주선으로 외상과 대통령을 면담하여 주재국이 우리 측 안에 공동 제안국이 되는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외상과 대통령에게는 서울에서 특별히 보내온 인삼이 선물로 증정되었음은 물론이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나라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은 보통 부인을 3~4명씩 거느리고 있어, 남성정력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 기회로 우리 대사관의 인삼외교는 혁혁한 공을 세워 그 해 30차 유엔총회에서 우리측 안이 무사히 통과되는 성과를 걷기는 했으나, 기이하게도 북한측 안 또한 통과되는 웃지 못한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을 계기로 더 이상 한반도 문제가 유엔총회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후 우리는 모든 주재국과의 어려운 교섭이나 훈령 사항이 있을 때는 번번이 인삼을 들고 가 교섭에 성공하였으니, 이를 두고 우리 외교를 인삼외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당시 인삼을 복용한 거의 모든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남성정력 증진에 인삼의 효험이 대단하다고 입들을 모으는 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인삼은 효험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더니, 아마 인삼은 우리 동양 사람보다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더없는 영약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 외교통상부대사. 외교안보연구원명예교수.

현 외교협회 정책위원. 랜드마크씨앤디(주)상임고문. ≪칡넝쿨≫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