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수필⑪∣

 

긴 세월, 롱테이크

 

임권택

 

많은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이야기보다는 주로 긴 세월에 걸친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다. 자연히 100편이 넘는 내 영화 가운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한 영화 속에 모두 담은 영화가 많다. 특히 눈을 좋아하는 나는 겨울 풍경을 찍을 때 유난스럽게 고집을 부리는 편이다. 겨울 장면을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눈이 내린 정경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 나와 촬영 스텝들이 오지도 않는 눈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애태우던 기억이 몇 번이나 있다. 오늘날이야 일기예보가 어느 정도 들어맞지만 예전에는 예보라는 것이 확실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게다가 촬영이라는 것이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맞추어 진행되는 것이라, 촬영을 정해놓은 그 날짜에 많은 인원들이 모여서 눈이 내리기만을 무작정 기다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작업은 인내심이라는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이다. 많은 인원들이 이동하고 또 머무르는 것은 곧 많은 노력과 경비를 요한다. 그렇게 기다리는 가운데 눈이 내리고 나면 그때부터 정신없이 바빠진다. 그 눈이 녹아 사라지기 전에 예정하고 있었던 모든 장면을 찍어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영화를 찍을 때인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단양 근처에 있는 안개마을에서는 열흘을 기다려서 눈이 잠깐 왔었는데, 그때가 바로 그러했다.

 

내 영화에서 눈이 쌓인 장면들은 대부분 이렇게 긴 기다림 끝에 얻어낸 것들이지만, 더러는 순조롭게 만족스러운 장면을 찍을 때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편제>와 <만다라>이다. <서편제>는 마치 귀신이 도운 것처럼 촬영이 필요한 날짜에 바로 눈이 내렸었다. 주인공인 송화가 아이를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나는 라스트신을 찍을 때의 일이었다. 촬영지 청산도는 염전도 있고 또 남도 쪽이라 눈이 잘 쌓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때마침 눈이 펄펄 내려서 쌓여준 것이다. 컷!을 외치는 소리에도 힘이 펄펄 실렸다. 또 ‘사철가’를 배경으로 유봉과 송화가 길을 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계절의 풍경이 흐르듯 지나가며 세월의 흐름을 유봉과 송희가 나이 든 모습으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찍을 때에도 꼭 필요한 때에 맞춰 거짓말처럼 눈이 내려주었다. 또 눈은 아니지만, <서편제>를 만들 때는 이렇게 귀신이 도운 것 같은 일과 자주 만났다. 이 영화에서 내가 그 중 좋아하는 부분은 청산도 시골 길에서 유봉 일가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걸어가는 장면이다. 5분 40초나 되는 롱테이크로 찍은 것이었다. 그 장면을 찍는 날이었다. 리허설을 마치면서 나는 ‘아, 이 장면에서 회오리바람이 한바탕 불고 지나가면 참 좋겠는데.’하고 생각했다. 전혀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창 촬영을 하는데 회오리바람이 진짜 부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모두 한 마디쯤은 언급하는 장면이 되었다. 어떤 국제 영화제에서 다른 감독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그렇게 우연히 도운 작품이 흥행 역시 잘 되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또 판소리의 국창(國唱)이라고 할 수 있는 김소희 명창이 <서편제>로 내게 감사패를 주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영화가 잘 되는 것은, 고생만 하고 빛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불우한 명창들의 원혼들이 도와주신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고비 때 마다 귀신이 돕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또 내가 아주 중요한 내 영화로 꼽는 <만다라>도 긴 호흡이 필요한 영화이다. 그만큼 찍는 사람도 끈질기게 참고 기다려 얻어낸 장면이 있다. 이것은 두 승려가 상반된 방식으로 제각기 수도생활을 하는 내용이다. 법운이라는 승려는 계율 안에서 수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산이라는 다른 승려는 계율 밖에서도 수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수도 생활을 한다. 이 영화 후반부에 가서 법운이 얼어 죽은 지산을 불태워 지게에 얹어 지고 암자로 데려가는 장면이 있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이 온 천지가 다만 하얀 눈의 정적에 쌓여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내설악에서 눈이 내려주기를 고대하며 꼬박 삼 일을 기다려 찍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장면들을 무척 아낀다.

 

흔히 내 영화 속에서 눈이 있는 장면은 꽤 볼만한 장면이라고 한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눈을 꽤나 좋아하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마치 남이 하듯 한다. 눈이 와서 쌓이면 온갖 더러움을 묻어버려서 좋다. 빈부의 차이도 덮어 버리고 사람들 사이의 욕심스런 아귀다툼 같은 것도 모두 덮어 차분히 가라앉히는 느낌이 들어 좋다. 나도 별 수 없이 속인인지라 내게도 속인들이 가질 법한 욕심이 많이 있다. 또 영화를 만들다 보면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도를 넘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순결하고 모든 세상의 소음을 다 삼킨 듯한, 정적을 머금은 고요한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불꽃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 눈처럼 가라앉히지 않으면 좋은 영화가 찍힐 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내가 해오고 있는 영화를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눈이라는 것이 이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하는 참 좋은 것이긴 한데, 이것이 또 내려서 쌓이기도 참 힘든 것이고, 또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보면 쉽게 녹아내리기도 하는 것이어서 아쉬운 적이 많다. 눈이 녹고 나면 가라앉았던 내 지나친 욕망도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하면, 내가 눈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정적과 맑음의 세계를 내가 좋아하고 있으며, 영화를 찍는 데도 그 맑음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 세월동안 영화를 했다. 그리고 내 나이 이미 80을 바라보고 있다. 이쯤이면 마음의 욕심 같은 것을 덜어놓을 나이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 죽을 때까지도 나는 정신을 못 차릴 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자신을 다스리자고 거듭 거듭 속으로 되뇌며 살아가고 있다. 다 내려놓고 산다는 것, 그런 건 독종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처럼 어눌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영화감독

작품 ≪서편제≫ ≪만다라≫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