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기행|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음악 축제

 

이순희

 

물, 빛, 소리, 향기, 촉감이 모두 서로 멋지게 어울려 아름답고 축복 받은 땅, 남불 프로방스는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원이다. 마치 어떤 무한 투명체 속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도 한다. 늘 푸른 하늘, 세균이라는 건 전혀 근접이 어려울 듯한 맑은 공기, 여름철 작열하는 태양빛이 있되 나무 그늘에만 들어서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도 되는 쾌적한 날들, 그리고 겨울이 온다 해도 거리마다 흐르는 분수의 노래는 끝이 나지 않는다. 꾸르미라보(Cours Mirabeau) 거리, 2-3백 년 된 우람한 플라타너스 그늘아래 카페에는 여전히 노천이나 테라스에 앉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포도주나 찻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바쁠 것도 빨리 가야 할 일도 없다는 표정들이다.

여유는 진짜 멋이라고 했던가. 이런 사람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색조는 프랑스 알프스산자락이기도 한 동북편의 야산들, 형형색색의 수목들이 들어찬 들판의 라벤더, 미모사, 올리브, 아몬드, 보리수, 체리 나무들, 그리고 요리에 들어가는 박하, 사리에뜨, 땡, 로마랭, 바즈릭 같은 허브향이 물씬한 식물들의 세계와 강한 친화력을 갖고 있을 것 같다. 뤼베롱(Lubéron) 산맥, 생뜨 빅뚜아르(Sainte Victoire) 바위산, 방뚜 산(Mont Ventoux) 그리고 론(Rhône)의 물, 소르그(Sorgues)강 등은 이곳을 거쳐 간 문인과 예술가들의 작품을 낳게 만든 영감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시작되는 남불 고속도로를 태양의 도로라고 명명한 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는다. 엑스(Aix)에서 30분만 자동차로 달리면 막셀빠뇰(Marcel Pagnol)의 작품세계이기도 한 코발트빛 지중해, 말세이유(Marseille) 구항의 친근한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배타는 사나이들의 떠들썩한 통쾌한 웃음소리, 경상도 말처럼 강한 사투리, 선착장에 메여있는 작고 큰 배에는 저마다 자국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엑스와 말세이유, 이 두 도시는 이렇듯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문화적인 배경이 많이 다르다. 엑스에서는 표준어를 우선하고 은퇴한 빠리지엥들의 별장이 많이 있다. 알게 모르게 비록 허름하게 보여도 속이 꽉 차있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다. 거기다가 중요한 대학이 있어 사람들의 내면의 양질을 채워주는 몫을 크게 하고 있다.

엑상프로방스(Aix-en- Provence)라는 도시의 근원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의 이주로 세워진 마르세이유에서 시작된다. 2세기(BC)에는 이 주변지역을 전부 로마인들이 점령하였고 그때 그들이 프로빈씨아 로마나(Provincia Romana)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프로방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다시 게르만 혈통의 프랑크족에(536) 합병되었다가 처음으로 9세기에 프랑스왕국이 세워졌고 10세기에 최초로 영주가 임명된다. 그리고 세월 따라 여러 왕국의 영주들의 통치를 거쳐 마침내 15세기에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이런 역사를 지닌 까닭에 지금도 로마제국의 흔적들이 많이 산재해있으며, 문화재관리를 위해서 재주 많은 국민답게 유물훼손 방지에 철저한 배려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옛 교황청, 개선문, 고대야외원형 경기장, 교각, 목욕탕, 공동묘지 같은 중요 유적들이 아를르(Arles), 아비뇽(Avignon), 님(Nîmes) 주변에 산재해 있어 휴양지 프로방스로 관광수입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흔히 프로방스 지방이라고 할 때 행정구역상으로는 프로방스 알프 코트 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세 지역을 합해서 쓰는 통칭이다.

약 15만 시민이 사는 이 작은 도시에 매년 6월 중순이 되면 여기저기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이름도 모르는 지역 전통악기를 든 악사들이 거리를 돌면서 연주하는 것을 본 기역이 난다. 7월을 띄우는 서론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7월이 되면 본격적인 오페라 공연으로 밤거리는 우아한 분위기가 역어진다. 8월에는 대학 가까이에 있는 공원, 천여 명은 너끈히 입장할 수 있는 주르당(Jourdan)에 세계 각국전통무용단을 초대해서 시민을 위한 공연이 자주 펼쳐진다. 음악축제는 바이로이트, 짤츠부르그, 베르겐, 베로나 등과 함께 유럽의 성공적인 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인들에게는 신이 내려준 이 천혜의 조건이 더할 나위 없는 바캉스 철의 유혹이 되기도 하며 지금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문화 예술가 학생, 관광객의 숫자가 연간 고정인구의 수십 배가 된다고 하며, 여름 축제동안 7월 한 달간 매표수가 5만장 정도라고 읽은 적이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오페라 이외도 여러 형태의 크고 작은 음악회가 이 집 저 집에서 잔치처럼 벌어진다. 시간과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고 음악을 좋아한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곳이고 또 기회이다. 우선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구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대주교관 넓은 뜰에 가설된 멋진 오페라무대, 2007년에 개관된 프로방스 대극장, 18세기 때에 만들어진 쥐 드 뽐(Jeu de Paume), 생 소베르(Saint Sauveur) 대성당들은 음향효과나 시설 모두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0년대 중반 내가 처음 대주교관에 갔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검은 재킷에 나비넥타이, 여성들은 롱드레스 차림이었다. 특히 아직도 기억이 나는 장면은 아주 긴 막간 시간이다. 대주교관은 시 중심부에 있고 주위는 몇 백 년 된 고택들과 좁은 길들로 되어있지만 다행히 그곳 정문 앞에 꽤 넓은 광장이 있어서 화려하게 차려입은 관객들은 광장에 즐비하게 차려진 샴페인과 포도주잔을 들고 그날 가수들의 노래를,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혹은 의상이나 무대를 얘기하고 즐길 수 있었다.

 

엑스음악축제는 세계대전이 끝난 모든 예술분야에 일종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현상이었다. 이미 칸에 1946년 영화제, 1947년 아비뇽 연극제가 벌어졌고 마침내 1948년에는 엑상프로방스 음악축제가 가브리엘 뒤쒸르제(Gabriel Dussurget)의 열정과 노력으로 모차르트의 4대 오페라의 하나인 꼬지 판 뚜떼(Cosi fan tutte)로 첫 막이 올라갔다. 그의 배후에는 예술애호가 귀족친구 리리 빠스뜨레(Lily Pastré)가 물심양면 후원했고 포스트 도안 작가인 그의 친구 까쌍드르Cassandre)의 무대설치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힘겨운 일을 도와준 주변덕분으로 이루어진 무대였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하고 많은 세월을 거치는 동안 음악 선택이나 방향, 진행등에 많은 발전을 가졌다. 그것을 4단계로 흔히 나눈다. 축제는 소문에 걸맞다. 12세기 유랑 음유시인들로 시작해 노벨상수상시인인 미스트랄(Mistral), 도데(Daudet), 지오노(Giono), 빠뇰(Pagnol), 졸라(Zola), 꺄뮈(Camus), 샤르(Char) 등의 작가들과 그라네(Granet), 세잔느(Cézanne), 방고호(Van Gogh), 피카소(Picasso), 세자르(Cesare), 바잘렐리(Vazarely) 같은 조각가, 화가 또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와 같은 음악의 거장들이 숨 쉬고 족적을 남긴 고장임을 상기하면 오늘날 엑상프로방스의 국제 음악축제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내가 드나들던 때는 베르나르 르포르(Bernard Lefort,1972-1982)가 감독으로 있던 때였다. 초기에는 모차르트 작품들로 시작했으나 20세기에 이미 사라졌던 벨칸토(Bel canto)의 재생을 시도하여 크게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시대이다.

대학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바캉스 떠나지 못하는 학생들은 가끔 밤 재미를 찾아서 무리지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풍경은 대학도시의 특징이기도하다. 돈이 많이 없는 학생들, 젊은 연인에게는 오페라는 그림에 떡이다. 그들의 문화체험과 저녁 나들이는 무료관람인 주르당 공원이 안성마침이다. 여름 내내 비 뿌리는 날이 거의 없으니 야외공연 날짜 잡기에 아주 편한 곳이고 어둠이 덮이면 한국가을 날씨 같아 무엇을 해도 상쾌하다.

그러나 이곳 날씨의 폭군이라는 미스트랄 (Mistral)은 론강 계곡을 따라 북에서 불어오는 아주 차고 건조하다. 풍속이 거의 100km이고 이삼 미터 높이까지 이른다. 겨울, 봄에 잦으나 특별한 계절이 없다. 내가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이 유명한 강풍의 환영을 받았던 것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당하는 일이나 여름옷을 입고 간 나는 당황했다. 불안하게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떴더니 언제 그랬느냐고 되묻듯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따가운 햇살이 이미 창가에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 사람들 중에는 미스트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이유는 미스트랄이 지나가고 나면 온 도시가 깨끗하게 청소되고 하늘은 유난히 푸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엑스는 나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 멋진 친구들도, 학위도,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사랑, 삶의 열정, 그런 거창한 것까지 곰곰이 오래오래 생각해볼 기회도 얻은 셈이다.

엑스는 내 젊은 영혼을 크게 흔들었던 도시다.

 

 

엑상 프로방스대학교 불문학박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현재 프랑스 남불 거주.

저서 :산문집 ≪늙은유럽≫ ≪나는 섬이고 싶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