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서 나 찾기

 

 

고임순

 

딸과 함께 시누이 집이 있는 스카스데일에서 기차를 타고 중앙역에서 내린 뒤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뉴욕의 중심 번화가 맨해튼 거리로 나왔다. 길 양쪽으로 압도되고 마는 즐비한 고층 빌딩들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건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명품들의 집산지인 명품 가 소재 상점들은 지금 한창 세일 중이 아닌가. 50%, 심지어는 80% 까지. 계속 이어지는 상점들도 거의 세일 중이어서, 이곳 역시 불경기 바람이 일고 있음을 실감했다.

6월의 대낮, 눈 부시는 햇살 속에 거대한 미국의 저력이 용광로처럼 녹아들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곳. 오늘 하루에 매달려 앞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세일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거침없이 빵을 먹는가 하면 건물 계단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도 있다. 차도에는 노란 영업택시와 간혹 우리 소나타차가 교차하는 사이로 달리는 시티투어 2층 버스 위에 빽빽이 앉아 손 흔드는 사람들. 촌뜨기 동양여인은 이곳저곳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다.

매혹의 거리. 세계 축소판 같은 이곳 어디엔가 보물이 숨어있는 것 같아 해찰을 하다 보면 걸음이 느슨해졌다. 길가 노점, 흑인 상인에게 모자 하나 사 눌러쓰고 썬 글라스에 운동화, 티셔츠를 입고 걷기 대회에 나온 선수처럼 나는 그냥 걸으며 그냥 바라보며 그냥 생각에 잠겼다. 저만치 앞서가는 딸은 노상 지도를 펴 행선지를 행인에게 묻고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뒤돌아보고, 팔을 높이 들고 손짓하면 나는 잽싸게 줄달음질치는 것이다.

긴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꼿꼿한 자세로 걸어가는 딸 뒤를 따라가자니 힘이 부쳤다. 나이 들어 둔해진 몸짓으로 어리둥절한 내가 우글거리는 흑 백 피부의 인파 속에서 자칫 미아가 될까봐 노상 챙기는 딸의 모습. 옛날, 내가 잡고 다녔던 고사리 손이 이제 어미를 부르는 큰 손이 되어서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이렇게 우리 모녀를 이어주고 있는 사랑의 줄에 나는 절로 이끌리어 가는 것이리라.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모마(MOMA)현대 미술관’에 도착, 바로 엘리베이터로 5층으로 올라가 작품들을 관람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세계적인 명화들. 근대화가의 거장 폴 세잔느, 20세기 표현주의 화가 앙리 마티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19, 20세기 화가를 대표하는 파블로 피카소와 빈센트 반 고호의 독특한 화풍들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가득 매운 감동의 물결이 시나브로 내 가슴을 적시고 있지 않는가.

명화들에 빨려 들어간 우리는 일일이 메모하고 사진기 셔터를 누르며 심층 탐구에 여념이 없다. 4층에는 회화와 조각이 진열 되어있어 천천히 감상했다. 3층에서는 건축 및 디자인, 드로잉, 사진 등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고 2층에는 판화와 삽화집 등이 이색적이었다, 1층 로비로 내려와서는 운치 있는 조각 정원을 돌아보고, 벤치에 앉아 한숨 돌렸다.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작품들을 심도 있게 관람하다보니 벌서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해가 지면 풍경이 달라지는 맨해튼 거리. 5시면 버스운행이 끊기고 6시가 되면 모든 상점은 문을 닫고, 길은 시대의 첨단을 걷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길게 줄 선 사람들, 링컨센터 분수 옆 공원에는 오페라와 발레공연을 보기 위해 성장한 노년층도 눈에 띠었다. 소공원에서는 악사들이 연주하는 재즈 리듬에 모여든 사람들이 춤추고, 어린이를 동반한 엄마도 모두 끼어들었다. 오늘의 축제가 무르익어가는 낭만 넘치는 맨해튼의 밤.

뉴욕 체류 한 달 가까이, 우리는 날마다 신비하리만치 새로움을 안겨주는 맨해튼 거리를 누비며 박물관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특별전을 보기 위해 두 번이나 찾았고, 그 분관인 ‘클로이스티스’에서 중세 유럽의 미술을 감상했다. 또 센트럴파크를 소요하며 근처에 있는 달팽이 모양의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그 예술적인 건축미에 매료되며 세계적인 회화작품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몇 집 건너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흑인 작가의 특이한 붓놀림에서 동양의 서(書) 예술을 접목시켜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맨해튼 넘어 분위기가 다른 브루클린에서 진짜 뉴욕을 만났다. 맨해튼 고층 빌딩이 다듬어놓은 스카이라인 대신 브루클린에는 기발한 벽화가 거리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전에 공장이나 창고였던 장소가 그 모습을 유지한 채 아티스의 작업실이나 카페로 변모해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걸음을 재촉하고 찾아간 ‘브루클린 박물관’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 보니 현관 입구에 펼쳐진 별천지. 넓은 공간에 전시된 발작크를 모델로 한 로댕의 조각 작품에 매료되고 말았다. 2층에서는 우리 가야토기, 고려시대 물병, 조선시대 회화 ‘소나무와 학’ 등이 전시되어 있어 뭉클해져서  뜨거운 가슴으로 발을 멈췄다. 3층에는 이집트 벽화, 앗시리아 도자기가 이색적이었고, 4층에서는 특이한 20세기 유럽 그라스를 돌아보고 5층까지 올라가 샅샅이 탐색 관람했다.

수필을 쓰면서 서화예술에 심취하고 있는 나는 미술관에 전시된 모든 장르의 예술작품들을 단순히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작품들이 자연 자체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터득하면서 그 즐거움을 맛보려고 부지런히 여러 곳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뛰어 넘어 다른 것을 탐구하고 있어도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의 탐구가 되고 마는 것임을 알았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곧장 ‘브루클린 다리’ 쪽으로 향했다. 다리 입구에는 운동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자전거 타는 사람과 어린이를 동반한 주부들에 합류. 도강하기로 마음먹고 2마일이나 된다는 길을 겁 없이 걸어갔다. 힘들면 도중하차 하리라 했는데 내친김에 강 건너 동네까지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습관적으로 갤러리를 찾아 골목길을 누볐다. 이제 더 걸을 수 없이 기진맥진하여 세 번이나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돌아오니 한밤중이었다.

길은 깨달음인가. 뉴욕 심장, 낯선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찾아다닌 미술관마다에서 그 많은 예술 작품의 감각을 닦으며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일의 삶을 홀로 버틸 수 있는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부여해주던 길. 그곳은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내가 향유할 수 있는 가장 진중(珍重)한 사색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길은 두 다리로만 걷는 게 아니었다. 천지사방 열린 마음으로 걸어야 했다. 이렇게 걸으면서 나는 풍요의 땅 뉴욕의 자연과 풍물에 결코 경이의 눈으로 감탄만 한 것은 아니다. 욕심 부리고 부러워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 지아비의 아내로 3남매의 어머니로 반세기 세월을 꿈처럼 흘러 보낸 내 인생의 보답이기에 낯선 길을 마음 문 활짝 열고 걸었던 것이다.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이화여대, 협성대 강사 역임. 양덕연묵회 회장.

수필집 ≪약속≫, ≪내 안의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