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말 걸기

 

권일주

 

2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서자 김 박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보아도 지난봄에 팔순 기념 사진전시회를 여신 분 같지 않다. 피부 속 깊숙한 곳에 배어 있는 웃음기가 은근히 스미어 나오는 발그레한 표정에 연노랑 셔츠를 꼿꼿한 허리춤에 단정히 넣어 입으셨다.

“연한 개나리빛깔 셔츠가 너무 잘 어울리세요. 아주 멋져 보이셔요.”

엘리베이터 안에 나와 함께 있던 한 여자가 인사를 했다. 그다지 친밀한 사이는 아닌 듯 했다. 말이 더디고 순발력이 없는 나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웃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하고 만다. 한번쯤 그런 인사가 재빨리 내 입에서도 나왔으면 하는데, 여전히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아름다운 분이 보시면 다 좋아 보이는 법이지요”

빙그레 미소를 띤 김박사의 대답이다.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잠깐 사이에 엘리베이터 안에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스포츠센터에서 알게 된 박여사가 내겐 그렇다. 그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어렵게 여기는 법이 없다. 집에서 시루떡을 찌는 일도 쉽고 송편을 빚는 일도 한나절 ‘뚝딱’ 하는 일이란다. 5,6십 명분의 도시락 싸는 일도 “그까짓 거 뭐” 한다. 나는 그녀가 너무 크게 보여서, 멀리서 보여도 가까이 다가가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꾸뻑 인사를 건네거나, 그가 뭔가를 하느라 허리를 구부리고 있으면 구부린 그의 얼굴 아래로 내 얼굴을 억지로 집어넣으며 “안녕하세요” 한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데 서툰 내가 유일하게 용기를 내는 경우이다.

그를 오랜만에 라커룸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 얼핏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생소한 얼굴이다. 내 표정이 말을 했는지 그가 자진해서 말했다.

“얼굴이야 원래 우리 부모가 무허가로 대충 만든 것이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이때껏 별 탈 없이 살아왔지 않수? 그런데 무릎이 아파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으니 사정이 완전히 다릅디다. 알고 보니 우리 어머닌 내 몸까지도 무허가로 대충 만드셨나 봐요, 글쎄. 의사는 이 참에 재건축이라도 하잡디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대충 지은 무허가이지만 평생을 등 뉘이고 살아온 내 건물을 무너뜨리자니, 그게 좀, 그렇습디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단숨에 말을 마치고는 순식간에 원래의 그이로 돌아가 대뜸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아니, 그런데 도배는 언제 마칠 작정이유?”

“무슨 도배?”

눈을 크게 뜨고 되묻다가, 우린 함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언젠가 그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게 몸이우? 그저 뼈에다 도배한 거지. 아니, 도배를 다 끝낸 것도 아니지, 겨우 초배만 발라 놓은 거지요. 이왕 하려거든 이중으로 두툼하게 잘해요. 중간에 바람 좀 집어넣어 부품하게 하는 거 말이우.”

이번에도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는 게 고작이었다.

 

“여전히 고우시네요. 10년 전에 뵈었을 때와 똑같으셔요.”

“허허, 웬 청년이 들어오는가 했습니다, 그려.”

오다가다 조금만 귀를 열면 아름다운 말들과 예쁜 마음들을 많이 만난다. 말재주가 없는데다가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순발력 같은 것은 더더구나 없는 나는 매번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으로만 웃을 뿐이다. 그리고 저만치 지나쳐 가서 “아차!” 한다. 이런 말 한 마디가 결국 자기 자신의 뜰에 모닥불 하나를 피우게 되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것을 살아온 세월로 알면서도 안타깝게도 나는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은 그렇게 게으르면서도 간혹 누군가가 내 삶에 한 마디 말을 걸어줄 때 나는 쉽사리 솔깃해진다. 그만큼 내 삶이 그리는 무늬와 빛깔에 밝은 눈을 갖길 늘 원하고, 그 소리에 늘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

내 삶에 말을 걸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달고 그동안 참으로 많은 것에 기웃기웃 머리를 들이밀었다. 삼십 년 혹은 그에 버금가는 세월동안 고집스럽게 끈을 놓지 않고 말을 건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러나 목소리가 작은 탓인지 방법이 미숙한 탓인지, 오랫동안 내가 끈질기게 말을 걸고 있는데도 내 상대들은 아직도 내게 말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나는 내 삶에 말을 걸고 싶어 어둑한 저녁에 집을 나섰다. 요즘 내 상대는 중국 고전이다. 겨울저녁 찬바람이 다가와 무리한 짓이라고 코트 자락을 뒤집는 날이나, 또 다른 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흘기는 날이면 소음들이 난무하는 거리 한중간에서도 때로는 멈추어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방향을 가늠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짐짓 큰소리를 내며 쫓아 보낸다.

 

어제 낮, 책상머리에 무심히 앉아 있다가 창 너머 나뭇가지 위에서 짹짹거리는 새들에게 말이 걸고 싶어서 창문을 열고 창틀에 땅콩 몇 알을 얹어놓았다. 이내 머리에 까만 모자를 쓴 조그만 박새란 놈들이 폴짝 폴짝 날아오더니 부리가 작아 땅콩 한 알을 한 입에 물지도 못하고 쿡쿡 찧다가 몇 알을 그만 밑으로 떨어트렸다. 그놈들은 제 풀에 놀란 듯 잠시 허둥허둥 하더니 반쪽이 난 것을 재빨리 물고 날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다시 살짝 창문을 열고 반쪽으로 쪼갠 땅콩 몇 알을 창틀에 놓았다. 신통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가락 길이만한 작은 놈 하나가 포르르 날아왔다. 그리고는 한 조각을 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뭇가지 속으로 숨었다. 혹시나 내게 보이지 않는 곳 멀리로 날아갈까 봐 마음 조이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박새는 나뭇가지 위에서 가느다란 두 발 사이에 땅콩을 끼우곤 연신 머리방아를 콕콕 찧고 있었다. 땅콩껍질은 마른 나뭇잎처럼 춤을 추며 떨어지고 여전히 놈은 땅콩 반 알을 먹느라 바빴다.

아, 드디어 내가 박새에게 말을 걸었다!

 

 

수필가. 번역가

수필집 : ≪낮에 나온 반달≫ ≪혼자 놀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