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유

 

이미선

 

영어회화 강의를 시작할 때는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흔히 ‘자기소개’ 시간을 갖게 한다. 각자가 지닌 취미나, ‘좋아하는 것들’을 차례로 밝히게 하여 그것들을 회화수업의 주제로 삼는다. 예를 들어 “영화를 좋아하는가?”로 시작해서 “어떤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가?” “왜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영화이름은?” 순서로 질문을 정해준 다음 학생들끼리 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게 하는 식이다. 그러면 “왜?”라는 질문에 대해 “모르겠어요.”라는 대답부터 “그냥요.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라거나 “좋아는 하는데 그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라는 대답이 간혹 나온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결과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유 없이 그냥 좋아한다는 말은 모른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 역시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학원에서 구조주의를 강의했던 선생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표현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다. 그 교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고, 마음속의 목소리인 ‘생각’ 자체도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씀했다. 그래서 몇 년 전에만 해도 나는 “모른다.” 하나로 귀결되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별 이유 없이 그냥 좋아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하는 학생들의 대답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모른다.”는 대답을 스스로를 해이하게 방치하는 짓이거나 몇 초 동안이라도 깊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의 소치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이유라도 끌어내려고 학생들을 다그치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나는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미술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은 딱 두 번이다. 한번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있는 퀸 소피아 미술관을 둘러보다가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 섰을 때였다. 벽 한 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무채색의 그림 속에서 폭격을 당한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울부짖음이 큰 산사태처럼, 눈사태처럼, 큰 파도의 놀처럼 나를 덮쳐 왔다. 사진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사실주의 그림으로도 전달할 수 없는 강렬한 생생함에 압도당한 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 특별히 좋아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그림에 그런 감명을 받다니 너무나 이상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여성 지휘자를 인터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한 작곡가를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여러 작곡가들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작곡가들을 사랑하게 되어 어느 한 작곡가를 꼽는 것은 어렵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유명한 연주자들의 인터뷰 방송을 듣다 보면 그들 모두가 좋아하는 곡이나 작곡가에 대한 질문에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유명 지휘자도, 연주자도 아니고 그냥 듣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나 역시 좋아하는 클래식 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곡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러나 그림에 대해서는 이제야 조금씩 공부를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모든 화가를 사랑하는 단계까지는 나가지 못한 상태이다.

내 첫 사랑이자 지속적인 사랑의 대상은 마크 로스코이다. 인상파 화가들 주변만 맴돌던 내 눈에 어느 날 로스코의 그림이 릴케의 시 구절처럼 햇빛처럼, 꽃잎처럼, 기도처럼 다가왔다. 전 세계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그림에 대해 미술 평론가 수준의 내공을 쌓은 친구 하나는 로스코 그림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미술에 대해 대단히 많이 아는 사람인가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나는 바흐나 베토벤, 모차르트를 훌쩍 뛰어넘어서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 같은 현대 작곡가를 좋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그림에서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찾으려 했던 내게 그저 네모 형태의 커다란 색면 몇 개로만 이루어진 그의 그림이 신선하고 신비롭고 따뜻하게 느껴진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좋다는 느낌만 있을 뿐 어떤 점이 어떻게 좋은 가에 대해서는 막연하기만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로스코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로스코와 달리 다른 화가들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이유가 비교적 선명한 편이었다.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DVD를 보며 그림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좋아하는 그림들이 생겨났다. 내가 유학생활을 했던 LA에는 LA 시립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LACMA와 현대미술관인 MOCA, 갑부들이 기부해서 만든 게티 미술관과 노턴 사이먼 미술관, 헌팅턴 라이브러리 등 상당히 큰 규모의 미술관들이 많다. 미술관을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프랑수아 부세의 예쁜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 하늘색을 부세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해 놓은 화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나무 그림은 어느 미술 평론가의 말처럼 시적이다. 옆으로 살짝 휜 듯한 가지 위의 나뭇잎들은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게 여리고 아름답다. 내게 처음으로 정물화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뎅의 그림은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품격이 있어서 좋았다. 이 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귀스타브 쿠르베와 카미유 피사로의 풍경화와 폴 고갱의 그림들도 조금씩 좋아졌다. 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모두 색감 때문이었다. 너무 강렬한 구도와 색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던 고갱을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몇몇 그림 속에 들어있는 밝고 화사한 녹색 때문이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나는 그 동안 혼자 해오던 미술 공부를 총 정리하는 차원에서 뉴욕과 워싱턴으로 미술관 순례 여행을 떠났다. 뉴욕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시작으로 프릭 컬렉션, MOMA, 휘트니 미술관을 둘러보고 워싱턴에서는 내셔널 갤러리와 필립스 컬렉션을 다녀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코로의 방이 있어서 선물을 한 아름 받은 것처럼 행복했고, 프릭 컬렉션에서는 모르트퐁텐을 그린 코로의 두 그림 중 한 점이 공사 관계로 전시되어 있지 않아서 섭섭했다. 사흘 동안 미술관 다섯 곳을 돌다 보니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발에 쥐가 나서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길을 물어물어 가며 찾아간 자그마한 규모의 필립스 컬렉션에는 인상파 그림들부터 현대 추상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이 미술관을 미술관 기행 일정에 포함시킨 것은 순전히 그곳에 로스코의 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술관을 모두 돌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로스코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의 네 벽에 로스코의 그림이 한 점씩 걸려 있고 방의 한가운데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벤치에 앉아 정면의 그림을 마주보고 앉아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필립스 컬렉션보다 로스코의 그림을 더 많이 소장하고 있는 내셔널 갤러리나 LA의 MOCA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아마도 연속해서 엄청난 양의 그림들을 보고 난 후 마지막으로 로스코의 그림을 본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립스 컬렉션에서 처음이나 중간에 로스코의 방에 들어가지 않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것은 행운이었다. 사흘 동안 온갖 이미지와 상징으로 가득 찬 그림들을 눈이 아플 정도로 보고 난 다음 접하게 된 몇 개의 색면으로만 이루어진 로스코의 그림은 문자 그대로 자유였다. 형태로부터, 의미로부터, 상징으로부터 벗어나서 오로지 색만 남아 있는 그의 그림은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고 따뜻했다. 마치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에서 <베네치아의 뱃노래>를 듣는 것처럼 형태와 의미에 지친 내 눈과 머리와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는 그저 막연하게 신선하고 신비롭고 따뜻하다고 느꼈던 로스코의 그림이 왜 좋은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강단에 선 나는 학생들에게 “왜 좋아하느냐”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의 대답 역시 여전히 “모른다”, “그냥”, “말로 표현할 수 없다”였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학생들에게서 어떤 이유를 끌어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몇 마디만 덧붙였을 뿐이다.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지금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영어영문학 문학박사,

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주요 저서[번역서]: ≪순수의 시대≫ ≪제인 에어≫ 등 20여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