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姑婦)

 

김선화

 

이야기 하나 - 최고 멋쟁이

 

부지깽이로 토닥토닥 두들겨 깨를 털고 콩을 털며 소리쳤다.

“어머니! 저는 꿈이 있었다구요!”

“뭔데?”

“그이를 세상에서 최고 멋쟁이로 만들고 싶었다구요!”

“허허, 사람마다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단다.”

어머님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대꾸하신다. ‘내 아들 털털한 것을 탓하지 말고 꿈 많은 너를 자제해라’ 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콩이 튀고 깨가 튀니 내 말소리가 좀 튀어도 표시가 나지 않아 속이 시원했다.

“나도 꿈이 있었다.”

“뭔데요?”

“너희 큰어머니처럼 맵시 있게 옷을 입고 싶었다.”

일순 나는 더 나오려던 불평어린 말이 꿀꺽 넘어갔다. 애잔하게 눈에 들어오는 어머님의 어깨. 옷을 사다 입혀드리면 어머니는 거실에 걸린 대형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며 태(態)를 살피신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멋쩍은 듯 씽긋 웃으시는 어른이다.

“이눔의 어깨를 무엇으로 두들겨서라도 쭉 폈으면 좋겠어.”

며느리 앞에서 그 말이 어디 쉬웠을까. 드물게 자식들로부터 받아 입는 새 옷 앞에서 오랫동안 가무려온 부러움을 토로하시다니….

“얘, 너희 큰어머니는 젊었을 때 얼굴이 달덩이 같았다.”

이 대목에선 늘 뒤끝을 흐리신다. 목선이 늘씬하여 외모 출중하였으리라는 것은 연세가 높다 해도 알아볼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중년에 이른 큰댁 시뉘들을 보면 부연설명이 없어도 다 안다. 그런 분 밑에서 어머님은 알게 모르게 의기소침해지셨던 것일까.

한데 어머님의 태를 딱 닮은 사람이 5형제 중 셋째인 내 남편이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한번은 의류매장에서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벗겨다 입히면 한결 멋이 날 것 같아 그렇게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는 새 옷을 입고도 주저 없이 형님네 두엄간에 들거나 호박, 오이 따는 일을 거들다가 진을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옷 갈아입는 번거로움을 조금만 투자하면 좋겠다는 내 말엔 아랑곳 않고, 그러한 일은 다 가식으로 여기니 답답하기가 그만이다.

이래 뵈도 장장의 시간을 일류 패션 계통에서 물든 내가 아니던가. 이 두 손이 백화점에 걸리는 유명 브랜드의 샘플을 지어내던 손이란 말이다. 소녀들은 내 손이 거치면 동화 속의 공주가 되고, 숙녀들은 내 손에 의해 세련미가 더하였다. 그러다보니 구멍 난 양말을 신고나온 청년의 외양쯤은 너끈히 보완할 것이라며 소탈한 차림의 한 남자를 배우자로 택했는데, 그게 그만 시행착오였던 것 같다.

허나 어머님께서 이루지 못한 꿈이 하 가슴 아파, 남편을 최고 멋쟁이로 만드는 꿈은 이쯤에서 그만 접어야 할까보다. 사람마다 한 가지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어머님 말씀대로, 지극히 자연주의적인 그를 내 고정된 틀에 끼워 넣지 않는 것이 백배 잘하는 일 같으니.

어쩌면 매사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그가 멋쟁이중의 멋쟁이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둘 - 등짐과 머릿짐

 

지금은 넓은 찻길에 들어간 밭이 있었다. 외진 산자락에 기댄 곳이라 해서 ‘외골밭’이란 이름이 붙었다.

여름날, 그곳에서 어머님은 멜빵을 꿰매어 붙인 마대자루에 단호박을 채워 넣으셨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 등에 지워주셨다.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무게였지만 어머님의 뜻이니 주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기적어기적 몇 걸음 옮겨 어머님이 들어계신 밭머리를 벗어난 나는, 등짐을 산모롱이 밭두둑에 부렸다. 그리고는 둔덕 아래로 내려가 짐을 머리위로 끌어올렸다. 어머님 말씀이라면 거역할 줄 모르는 나였지만, 그 등짐만큼은 받아들이질 않아 내심 통쾌했다.

짐을 이고 걷는 것은 얼굴이야 상기될망정 몸매는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은가. 옛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손으로 물방울을 걷어내며 걷는 품새를 나는 늘 아름답게 그려보곤 하였다. 그러나 등에 무게를 실은 여인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고역이었다. 양 어깨는 뒤로 제켜질 것이고, 가슴은 더욱 돌출될 것이기에 길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당히 민망하다고 여겼다.

그날 밤, 어머님과 겸상을 하고 앉았는데 빙긋 웃으며 한 말씀하신다.

“얘, 너는 기어이 이고 가더구나!”

“보셨어요? 저는 지는 걸 못해요, 어머니.”

“나는 이는 걸 못하겠더라.”

그제야 그분의 체형이 이해되었다. 작은 키에 어깨가 옥은 어른이다. 그러니 머리에 짐을 올리고 싶으셨을까. 만약 그랬다간 키가 한 춤쯤 더 줄어들었으리라.

큰아이가 일곱 살이고 작은아이가 세살이니 내 나이 서른둘일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눈앞에 닥친 농촌 일을 다 흉내 낼 만치 강단이 있었다. 산후풍으로 무릎관절은 아팠지만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어른들 말씀을 마땅히 따랐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제도 속에서 여자가 어설피 앓는 기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 권위주의적인 풍습이 은연중에 새 사람들(새 며느리)에게 물들어가는 집성촌에서 여성들은 감히 반란의 깃발을 들지 못했다. 땅 좁고 일 많은 지역에서 그것이 곧 집안을 위하고 가족을 건사하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여 나도 숨이 쉬어지는 한 일을 했다. 특수작물을 하는 마을이라 연세 드신 분들조차 쉴 짬이 없는 환경 속에서 몸을 사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시골생활을 면하였지만, 몇 년 사이 내 몸엔 지병이 생겨 등짐은커녕 머릿짐도 엄두를 못 내게 되었다. 다시 시어머님이 살아나 산밭에서 등짐을 지워주신다면 이젠 고스란히 이고 올 맘도 있는데.

 

 

≪월간문학≫ 등단.

작품집 : ≪포옹≫ ≪소낙비≫ ≪솔수펑이 사람들≫ 외 다수.

수상 : 한국수필문학상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