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보아야 예쁘다

 

이경수

 

우리 집 담장 밑과 대문 앞엔 풀들이 늘 제 터인 듯 자리를 잡는다. 내가 게으른 탓일 것이다. 게다가 먼지 풀풀거리는 척박한 곳에 자리 잡은 새 생명을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한 몫 해서이기도 하다. 가족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듯 누구 하나 손을 대지 않는다.

산과 들에서 멋대로 살았을 그들이 무슨 곡절로 흙 한 줌 뜰 곳 없는 거친 세상으로 왔는지 모를 일이다. 시멘트 바닥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대는 여린 잎을 보면 신통하고 반갑다가도, 도시의 바람을 견디지 못해 야위는 것을 보면 차라리 뽑아 버릴까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작은 몸짓을 보며 꽃을 기다리고 그들이 맺을 씨를 기다린다. 씨를 맺은 그들은 다시 들로 산으로 돌아갔는지 이듬해에 담장 밑이나 대문 앞에서 자라고 있는 풀은 대부분 다른 것들이다.

그동안 제비꽃이 왔다가고 강아지풀이 왔었고, 질경이와 냉이도 왔다가 갔다. 물론 내가 모르는 풀들도 여럿 왔었다. 다만 안뜰 시멘트 바닥 틈과 담장 밑 돌 틈에 민들레 두 포기만 여러 해를 옴짝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맺은 숱한 씨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지 이 근처에는 흔적도 없다.

 

지난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부드러운 흙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산에 사는 것들도 혹한에 많이 얼어 죽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흙먼지 쌓인 곳에 가까스로 묻힌 이곳 풀뿌리들이 배겨날 리 없었다.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집 안팎에서 노란 웃음으로 맞아주던 민들레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빈 자리에 다른 풀들이 돋아났다. 풀들은 발길과 매연에 시달려 모지라진 모습이지만 잘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미화원이 마을 골목까지 돌아다니면서 길가나 담 밑에 난 풀을 뽑아냈다. 덕분에 우리 집 담장 밖이 전에 없이 깨끗해졌다. 하지만 대문 앞엔 풀이 그대로 있다. 주인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려니 한다.

어느 날 우편함을 뒤지는데 얼핏 하느작거리는 게 보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어느 새 한 뼘 넘게 자란 서너 포기의 풀이 담 밑에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휑하던 곳에 웬 것일까 하고 가까이 가니, 벌개미취를 닮은 풀이 자못 이름 있는 풀처럼 그 품새가 어엿해 보였다. 미화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나 보았다. 그동안 눈에 띄었을 텐데 뽑아내지 않고 그냥 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집에 들어 갈 때면 일부러 발길을 돌려 이름 모를 풀을 들여다보곤 했다. 얼마 쯤 지나자 이리저리 뻗은 가지 끝에 녹두알보다 작은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이 풀에서는 어떤 꽃이 필까 하고 망울이 맺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궁금증에 들뜨던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아무래도 예쁜 꽃이 필 것 같지 않았다. 미화원도 눈치를 채고서 금방이라도 뽑아 낼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한데 대문 앞에서도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문 앞이라 드나드는 발길에 밟혔을 만도 한데 용케도 싹을 틔워 자라고 있었다. 늦된 듯 아주 작은 키에 아직 망울도 맺지 못했다.

담 밑에서는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꽃은 망초 꽃을 닮았지만 그보다 사뭇 작고, 빛깔은 하얀 색을 띤 옅은 분홍빛이다. 멀리서 보면 꽃이라고 할 수 없으리만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아기 볼 살 같은 분홍빛의 앙증맞은 모습에 자꾸 눈길을 주게 되었다.

꽃이 피자 나는 어떤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꽃인데 꽃이 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으면 했다. 그러나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풀이 무참히 뽑히고 만 것이다. 안 뽑히려고 버티기라도 했는지 꺾기고 뜯긴 흔적이 역력했다. 미화원이 그런 것일까. 꽃 같지 않은 꽃에 실망한 것일까. 꽃에 실망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이었다.

 

작은 풀꽃을 보려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아주 오래 보고 있어야 한다. 나는 뒤늦게 피기 시작한 대문 밖 풀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 송이에만 눈길을 모으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비로소 꽃이 지닌 색깔을 보고 꽃이 품은 향기를 본다.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을 위해 내가 웃던 것처럼 자기를 온전히 바라볼 한 사람을 위해 꽃망울을 터뜨리는 풀꽃.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하나, 나와 같은 작은 모습을 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들풀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귀뚜라미가 울자 꽃이 진 자리에 씨가 앉는다.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듯 하얀 갓 털이 바람에 파르르 떤다.

작고 볼품없는 풀꽃이 사람 눈에 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계간수필≫(2002) 천료

≪토방≫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