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달린다

 

김민숙

 

낙타가 달린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낙타를 가로채 쨍쨍한 햇살이 눈부신 사막을 질주한다. 어미 낙타가 사력을 다해 새끼를 쫓는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세상 바쁠 것 없이 터벅터벅 걷는 동물이 낙타가 아니던가. 낙타가 달리는 일은 제 생명을 내놓을 만큼 절박할 때다.

오빠가 초등 육학년이 되자 어머니는 재봉틀을 앞세워 짐을 꾸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쌀섬이라도 챙겨 도시에 방을 내어 주겠다는 할아버지의 회유에도 어머니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열아홉에 시집온 이후 어른의 말씀을 어기기는 처음이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4월이었고 8월을 넘기면 거주지 시 도를 벗어난 중학교 입학시험이 불가능한 때였다. 혁명 후의 삼엄한 법이 촌부인 어머니를 생명줄을 걸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이게 했다. 오빠를 시골 중학교에 진학시키는 일은 아들을 고향에 묶어두는 족쇄가 될 것이고 그것은 평생 자식의 등에 지게를 업히는 일이라고 어머니는 단정했다.

낙타는 거센 동물들에 맞서지 않는다. 수천만 년 동안 비옥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번성했던 낙타는 백팔십만 년 전 빙하기에 알래스카를 거쳐 아시아 서쪽까지, 일부는 아프리카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낙타는 먹고 먹히는 초원에서 밀려나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사막으로 물러섰다. 그것이 유순한 낙타의 생존법이었다.

어머니의 생존법은 터전을 지키는 일이었다. 지아비의 아내이기 전에 한 집안의 종부이고 머슴을 두량해 농사를 짓고 제사를 받들어야 하는 며느리였다. 공부하러 도시에 나간 지아비가 작은집 살림을 차렸을 때도 종가의 일을 맡길 데가 없다는 이유로 자리를 지켰다. 기다리면 돌아온다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에 순종했던, 백치처럼 유순했던 당신의 반란이 온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책임지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엄포에도 어머니는 꿋꿋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대소가의 비난을 감내하고 어머니는 우리 남매에게 난생 처음인 버스를 태웠다.

외종조부 댁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새 터전은 외종조부 댁과 가깝다는 것 외에 어디하나 마음 끌리는 곳 없는 극한지대였다. 하루 종일 빛이 들지 않는 북향 골방에 재봉틀 한 대가 유일한 재산이었다. 이사한 지 이레 만에 어머니는 대문에 <삯바느질>이라고 써 붙이고 집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집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는 귀할貴 향기香의 이름자를 가진 부녀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으리라. 사막까지 밀려나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남매를 두 발로 우뚝 세워야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낮고 엄격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고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명절이 다가오고 일거리가 넘쳐 밤을 새우면서도 바느질일은 딸이 거들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다. 손재주가 좋으면 팔자가 사납다는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동상으로 손가락 끝이 갈라져 피가 흘러도 당신은 바늘을 놓을 수 없었다. 골무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피를 감싸며 ‘우리 어머니가 이 손을 보셨으면 마음 아파 어찌할꼬’ 라는 탄식으로 외할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것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납입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가시 식물이나 건초 같은 것들을 먹으면서도 영양분을 등에 솟은 혹에 저장하는 낙타처럼 어머니는 반닫이 속에 혹 하나를 키우고 계셨다. 먹을거리까지 절약하느라 세끼 식사 중 한 끼를 감자, 고구마나 밀가루로 때우면서도 납입금이 고지되면 기다리기라도 한 듯 어머니는 혹을 열어 보이셨다. 사막 한가운데서도 의연히 서있는 낙타처럼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였다.

어머니는 늘그막에 새처럼 날아 바깥세상을 두루 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과 울릉도 여행을 할 때였다. 배멀미로 어지럼증이 심한 어머니께 동네 사람들이 새로 나온 멀미약 두 장을 귀밑에 붙여주었다는데 평생 약을 먹어본 적 없는 어머니는 귀미테 두 장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에 의하면 이틀을 잠들지 못하고 정신 줄을 놓아 버린 어머니가 상상할 수 없는 말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나는 직접 듣지 못한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가슴에 칼을 벼리면서 살아온 분이 아니었다. 늘, 세월 탓이지 사람 탓이냐고 했었다. 개화와 일제 수탈, 변란과 혁명을 거친 시대가 어머니의 모진 삶을 수긍하게 했었다. ‘어머니도 다 같은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 같아서 억울했다. 정신이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울릉도까지 가서 오빠가 모시고 온 어머니는 밤낮 사흘을 자고 멀쩡하게 일어났다. 병원에서도 당신을 정상이라고 진단했다. 그 일 이후로 어머니는 세상을 두루 구경하고 싶다던 꿈을 스스로 접었다.

폭우가 온 나라를 물에 잠글 듯 쏟아 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폭염이다. 이제 이승에서의 역할이 다 없어진 당신을 찾아 나는 사막을 두리번거린다. 딸 셋에 늦둥이로 태어난 외손자의 초칠이었다. 당신 키만큼이나 큰 미역을 들고 딸네를 찾아온 어머니는 외손자의 기저귀를 젖혀보고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을 거푸하셨다. 우연일까. 어머니는 외손자가 태어나서 두 달도 되기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지난 생에 지은 복이 약해서 이생의 터전이 척박하다던 당신은 세월을 거슬러 지금쯤 본래의 고향, 비옥한 초원으로 돌아가셨을까. 이제 당신의 몫은 다 끝났다며 흡족해하신 그 때의 늦둥이 외손자가 스물 하나, 나라를 지키는 장병이다. 오늘, 우뚝 선 내 아들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다.

 

 

≪계간수필≫(2005년) 등단

대구교육대학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