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

 

엄현옥

 

오징어잡이 배가 들어오자 주문진항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새벽 포구의 갯내음에 나도 덩달아 싱싱해졌다. 그만하면 정동진의 일출을 놓친 허전함은 보상받은 셈이다. 오징어는 진한 갈색의 미끈한 몸뚱이로 물총을 쏘아댔다. 칠흙같은 어둠 속을 유영하다가 집어등(集魚燈)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그물에 걸린 놈들이었다. 그 많던 오징어가 리어카로 옮겨지는 시간은 불과 5분 정도였다. 신기한 일이라도 만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오징어 회 좀 사먹으쇼!”

상인의 외침이 없었다면 오징어를 구경거리로 아침을 보냈으리라. 뱃사람들의 목청에 놀랐는지 오징어가 일제히 날뛰었다.

상인들이 어시장으로 몰려가자 포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박한 어선은 긴 동그라미 모양의 집어등을 주저리주저리 달고 있었다. 갯바람에 휘청거리는 유리등을 보니 얼마 전의 일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다.

휴일 오후 백화점을 찾았다. 모처럼 남편의 양복을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신사복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계산을 했다. 그때 점장(店長)은 사은품이 없어 죄송하다며, 자신의 재량으로 상품권을 주겠단다. 거기에 더해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을 덧붙였다. 백오십 만 원짜리 양복 두 벌을 카드 결제하면 일주일 후 취소해 주겠단다. 실제 구입한 양복보다 몇 배나 비싼 액수였다. 여름철이라 정장 판매 실적이 워낙 저조하여 며칠만이라도 매출액을 올려놓겠다는 그의 말은 그럴 법 했다.

“취소하러 오실 때는 맛있는 빵이라도 사 오셔야 합니다.”

자신의 호의를 알아 달라는 말에는 친근감마저 들었다. 살짝 고개를 내미는 불길한 예감은 ‘백화점의 유명 매장인데 설마…’ 라는 생각으로 바꾸어 버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도 떠올렸다. 그는 결제 후 영수증과 취소 날짜를 적은 명함을 주었다. 상품권을 손에 쥐고 나니 석연찮은 생각도 뒷전으로 물러났다. 콧노래를 삼키며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취소를 약속한 날이었다. 확인 전화를 했으나 점장은 다음날로 미루더니, 그 후에도 갖은 핑계를 댔다. 마침내 카드 대금 결제일이 임박하여 더 이상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생각 끝에 본사에 전화로 그간의 경위를 알렸다. 다른 이들도 같은 문제를 제기한 모양이었다. 매장 직원들이 저지른 계획적인 부정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내게 ‘작정하고 달려든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매장에는 당시의 판매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사태를 수습하고자 파견된 직원들이 오락가락했다. 그제서야 가까스로 결제를 취소할 수 있었다. 그들이 허위매출로 어떤 이득을 보았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분위기로 보아 본사에 끼친 손실은 큰 것이 분명했다.

<부당거래>라는 영화가 있었다. 잔인한 유괴 사건이 발단이었다.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사건에 대통령은 범인검거를 약속했으나, 유력한 용의자는 이미 사살되었다. 진급에 혈안이 된 간부들은 범인을 만들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조작된 사건을 둘러싼 형사, 검사, 스폰서의 공통점은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고위 인사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는 독버섯처럼 번식하며 공생을 유지했다. 그러나 모든 부당거래의 끝이 처참하듯 그들의 결말도 그랬다.

그 날 신사복 매장에서의 거래야말로 전형적인 부당거래가 아니었을까. 점장은 가매출로 자신의 이익을 구했고, 나는 상품권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었으니, 그의 불법 행위에 적극 가담하게 된 꼴이었다. 사태는 가까스로 수습되었으나 그날 받은 상품권을 생각할 때면 모종의 뒷거래의 증거품인 양 찜찜했다.

불빛에의 욕망을 뿌리치지 못한 오징어는 단숨에 손수레에 실려와 좌판에서 횟감으로 전락했다. 혹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백화점을 욕망의 집어등에 비유했다. 나 역시 심해의 적막을 뿌리치고 현란한 불빛의 유혹에 넘어가 부당거래에 야합한 죄로 삼주 간의 정신적인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던가.

어선은 비로소 야간 조업의 피곤을 덜어내기 위해 아침잠을 청했다. 밤바다를 유인한 집어등의 공은 지대했다. 검은 바다에서 눈부시게 발광했을 그것의 실체는 흐린 유리등에 불과했다. 바람이 잔잔해지자 그것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996년 ≪수필과 비평≫(수필), ≪수필시대≫(평론) 등단

작품집 ≪다시 우체국에서≫ ≪나무≫ ≪아날로그-건널 수 없는 강≫외

인천문학상, 신곡문학상 본상, 인천 PEN 문학상 수상

현재 ≪에세이포레≫ 주간, ≪수필과 비평≫ 이사, ≪선수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