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영혼들 · 5

 

박태선

 

원고지 다섯 매

 

일본 ‘사소설私小説’의 원조라 불리는 가사이 젠조(葛西善蔵, 1887~ 1928). 그는 하루에 기껏해야 2백 자 원고지 다섯 장 정도밖에 쓰지 못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피를 말렸던 것. 그나마 다섯 장정도 쓰게 되면, 기고만장하여 방바닥에 양손을 짚고 넙죽 엎드려 개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왕왕!’ 짖어대곤 하였다. 그러다가 흥이 한껏 고조되면 수컷이라도 된 양 한쪽 발을 번쩍 치켜들고 오줌을 누는 시늉을 한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술을 거나하게 마신 다음, 잠을 자고 있는 마누라를 깨워 흠씬 두들겨 팬다.

젠조가 만약 하루에 원고지 스무 장을 썼다면 어찌 됐을꼬, 짓궂은 상상을 해본다. 아마도 마누라가 열이라도 남아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한 마리 개

 

중국 사상계의 이단아, 이지(李贄 ․ 1527~1602). 그는 중국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로, 호는 ‘탁오卓吾’다. ≪속분서≫ 권2 <성인의 가르침 聖教小引>이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전까지는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

 

장정일은 이 대목을 읽고 핑, 눈물이 돌았다고 적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훔쳐 주고 나서 그 수건으로 내 메마른 영혼을 적시고 싶다. 그렇다. 이 세상의 진실(진리)을 깨닫는 데는 나이 50도 늦지 않은 것이다!

 

마중 받는 인간

 

한용운(韓竜雲, 1879~1944) 선생이 3․1운동으로 3년간의 옥고獄苦를 치르고 출감하던 날, 많은 인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독립선언 서명을 거부한 사람이요, 또 서명을 하고도 일제의 총칼이 무서워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었다. 선생은 이들이 내미는 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얼굴들만을 뚫어지게 보다가 이들을 향해 침을 탁탁 뱉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그대들은 남을 마중할 줄은 아는 모양인데, 왜 남에게 마중을 받을 줄은 모르는 인간들인가.”

 

호모 리베르

 

“인생은 한 줄의 보들레르의 시詩보다 못하다”고 한 예술지상주의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 1892~1927). 그는 인생의 희로애락 등 모든 것을 책을 통해 배웠다. 삶의 구석구석 책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실제로 그에게는 인생을 터득하기 위해 길거리의 행인을 바라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행인들을 알기 위해서 책 속의 인생을 이해하려고 했다. ‘책으로부터 현실로’라는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항상 진리였건 것이다. 일례로 여자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는 햇살이 뽀얗게 투과되는 여인의 귓바퀴나, 볼에 드리워진 속눈썹의 그림자를 고티에나 발자크, 톨스토이로부터 배웠다. 그 때문에 그에게 여자란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로부터 여자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자가 아닌 암컷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호모 리베르(Homo Liber): 도서관적 존재, 책인간

 

어떤 기적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 전 옥스퍼드 대학교의 한 강의실. 시험이 한창이었는데, 칠판에 적힌 문제는 이랬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서술하시오.”

모든 학생들이 숨을 죽이고 열심히 자신의 답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학생만이 답안지를 적을 생각을 않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심지어는 시험 시간이 다 끝나가도록 그 학생은 단 한 줄도 적지 앉았다. 결국 보다 못한 시험 감독이 그에게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적으라고 재촉하였다.

그러자 학생은 마침내 펜을 들어 답안지에 다음과 같은 한 줄의 문장을 썼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도다.”

 

이 학생이 훗날 “어느 날 아침에 깨어보니 유명해져 있더라(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는 말을 남긴 영국의 최고 낭만파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이다.

 

신은 나다

 

스피노자: 신은 무한자인가, 유한자인가?

우보: 신은 영원불변 하다고들 하니 무한자 아닌가요.

스피노자:(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럼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는가?

우보: 흔히들 신의 창조를 들먹이던 데요.

스피노자: 그럼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그는 세상 바깥에 존재하겠네. 그렇다면 그는 유한자인 셈이네 그려. 무한은 바깥이 없거든. 그럼 무한자라면 당연히 신은 세상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겠지(세상 역시 신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일부인 자네도 역시 신이 아닌가베!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만물이 신(汎神論)’이라고 했다. 따라서 신이 내 안에 없다면 어떻게 내가 신을 섬기고 찬미할 수 있겠는가? 신은 나(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한테는 스피노자 철학과 그 각자만의 철학이 있다.” - 베르그손

 

 

≪계간수필≫로 등단.

양재회(≪수필실험≫) 동인. ≪좋은수필≫ 편집위원.

현재, 번역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