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민명자

 

#1. 동생

 

일이 생긴 건 그 방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남편이 새벽에 출근을 한다기에 대문까지 배웅을 나갔다가 문을 닫고 들어오는데 설핏, 인기척이 들리는 듯했다. 반지하방 쪽이다. 담 너머로 출입구와 창문이 반쯤 보이는 그 방은 본채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다. 방 앞으로 가봤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자물쇠를 채워 놓았는데….’

두어 달 전 그 방에 살던 세입자가 갑자기 이사를 했는데, 한겨울인데다가 단독주택의 반지하방이라서 그런지 입주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불경기까지 겹쳐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도통 소식이 없으니 아무래도 봄이나 되어야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길게 마음먹고 자물쇠를 채워둔 채 무심히 지내던 터였다. 그런데 그 자물쇠가 온데간데없지 않은가.

문을 열어보려고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이게 웬 일인가. 열리질 않는다. 안에서 가로닫이로 걸게 되어 있는 문이 잠겨 있으니 방 안에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른 새벽, 나 혼자 있는 집에 누군지 모를 사람이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자 다리가 후들거려왔다. 나는 소리 없이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와 현관문을 잠갔다. 그리고 얼른 집 근처에 있는 파출소에 전화를 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경찰관 한 명이 금방 왔다. 막상 경찰관을 보니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그려져 덜컥 겁이 났다. 낯모르는 불청객의 모습을 볼 일도 두려웠다.‘안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잡으려 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도망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나를 경찰관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는 방 앞으로 가더니 문을 세게 잡아 흔들었다. 그러나 안에서는 누군가가 문을 잠근 채,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는지 손잡이를 꽉 잡고 요지부동으로 버텼다. 밖에서 문을 열려고 하면 할수록 버티는 힘은 완강했다. 경찰관이‘아무래도 창문을 뜯어야 할 것 같다’며 도구를 찾으러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그때였다. 방에서 한 남자가 비호처럼 튀어나오더니 대문으로 번개처럼 내달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당황하여 어! 소리만 지른 채 도망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머리를 깎지 못한 듯 장발이 텁수룩했고 한 눈에 봐도 행색이 무척 초라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남자가 도망친 후, 그 방을 보고나서다. 남자는 꽤 여러 날을 머문 듯 소소한 살림살이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디서 주워 왔는지 고물 텔레비전까지 있었고, 화면의 빛이 새 나가지 않게 신문지로 창문을 가리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물 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배설을 방에서 해결한 듯 악취가 풍기고 방바닥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한밤중이면 도둑고양이처럼 담을 타넘어 내 집에 숨어들어 잠을 청했을 그 남자. 혹시라도 그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여기서 어떤 불상사가 더 일어났을지 모른다. 아찔하다. 낮에는 멀쩡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으니 불청객의 존재를 알 턱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내 불찰도 크다. 아무리 비어 있는 방이라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나마 일이 이쯤에서 끝난 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니 한편 괘씸하고 한편 딱하다. ‘엄동설한에 오죽 갈 데가 없었기에….’

나는 방을 치우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그 남자가 입던 옷가지와 텔레비전을 정리해서 눈에 잘 띄게 대문 밖에 내놓았다. 그가 입던 옷들은 내게는 버려야 할 허섭스레기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당장의 추위를 모면할 요긴한 것들이니 혹시라도 골목을 지나다가 내가 모르게라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2. 길에서 자는 이

 

난들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었겠어요. 나도 한때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 두 딸의 아버지로, 말쑥하게 양복 차려입고 넥타이 매고 출근하면서 승진 꿈에 부풀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IMF는 긴 불운의 시작이었지요.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말았어요. 사방으로 알아봤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새 직장을 얻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요. 그래서 궁리 끝에 노부모집에 얹혀살기로 작정을 하고 전셋돈 빼서 아내와 팔 걷어붙이고 작은 분식점을 차렸지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불운이 오히려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어요. 그런데 경험도 없이 급하게 시작한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어요. 장사가 안돼서 카드로 야금야금 월세를 돌려막다가 사채를 쓰기 시작했어요. 장사 실패, 빚 독촉….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어요.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어느 날 밤, 잠을 자던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절절 매는 거예요. 급체인가 했죠. 그런데 그 날 병원엘 간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급성 간암…. 가을 은행잎처럼 얼굴이 노래지고 복수가 차오르던 아내가 불과 한 달 만에 세상을 뜨고 만 거예요. 인생,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순식간이더군요. 그렇게 아내가 죽고 나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사채업자한테 시달리다가 결국엔 늙으신 부모님에게 두 딸을 짐으로 남긴 채 돈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왔어요. 처음에는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지만 이제는 병까지 얻어서 막노동도 못해요. 나는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어요. 한밤중에 부모님이 사시는 집 앞까지 갔다가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불빛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이제 남은 건 병든 몸과 냄새나는 옷,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뿐이네요.

 

#3. 언니

 

어떤 노숙자의 사연이 생각난다. 언젠가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얼굴이 흐리게 가려진 남자가 떠듬떠듬, 웅얼웅얼 말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길에서 자는 이들이 여기에도 있다.

도심의 오후, 지하철역에서 백화점으로 통하는 지하통로의 한 쪽에는 빵을 곁들여 파는 작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고, 윈도우 한 귀퉁이에 노숙자 세 명이 누추한 몸을 웅숭그리고 기대앉아 있다. 공기를 타고 솔솔 풍기는 달콤한 빵 냄새가 그들의 허기를 더 자극할 것만 같다. 그들 앞으로는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무심히 오가고, 출렁이는 물질의 바다를 걸어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그들은 맥없이 바라보고 있다. 동생 집에서 도망친 남자가 혹시 저들 중에 끼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행인들과 대비되는 노숙자들의 남루한 행색을 본다. 저들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낙오한 패잔병들인가, 이 시대의 불청객들인가.

동생의 말로 미루어 보면 아침에 도망친 그 남자의 처지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침에 동생 전화를 받으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동생은 이미 방도 다 정리했고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가족들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평소에 마음이 여린 그 애가 얼마나 놀랐을까.

동생이 사는 집은 봄이면 마당의 하얀 목련이 골목을 오가는 행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어 붉은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담장을 기어오른다. 그런데 엄동설한에 불청객이 녹색 대문의 칸살 사이로 지하방을 염탐하고, 넝쿨장미 대신 담을 타넘은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그 봄의 안일을 제대로 맞지 못할 뻔 했다. 어쩌면 자물쇠가 채워진 방, 오랫동안 불이 켜지지 않는 창이 그를 유혹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한들 어떻게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도둑잠을 잘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한 겨울이라 방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의 칩거엔 안성맞춤이었을 게다. 게다가 담까지 낮고 보니 인적이 드문 밤에 하나씩 살림이 될 만한 걸 주워 들인 게 아닌가. 이른 새벽 동생에게 들킨 건 그에게는 불운이었던 셈이다. 아마 그날 그가 조금만 일찍 나갔더라면 여전히 밖으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을 것이고 동생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얼마 동안을 더 그와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만일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이럴 때 우리 자매에게 무어라 일러주실까. 내가 어릴 때만해도 누더기를 걸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전걸식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머니는 이런 사람들을 ‘금이 간 항아리’라고 했다. 아침마다 장독들을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으시던 어머니는 성한 항아리는 물론이고 금이 가거나 이 빠진 항아리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간수하셨다. 금이 간 항아리는 안쪽에 한지를 여러 겹 붙이고 윗부분을 철사로 동여매서 그 안에 허접스러운 것들을 넣어 쓰셨다. 그때마다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내게 어머니는‘이 항아리처럼 금 간 사람들도 모두 보듬고 살아야 한다. 사람마다 다 그릇의 크기가 다른데 간장종지처럼 작은 사람도 다 쓰일 데가 있으니 사람을 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을 찾는 걸인들의 동냥바가지나 깡통에는 따뜻한 밥이 담겨질 때가 많았다. ‘우리가 못 먹을 음식을 남한테 주면 벌 받는다’는 것이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그들을 내치지 않았다. 마을에 큰 잔치나 상사(喪事)라도 있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이 먼저 알고 왔고, 그때마다 마당의 한 쪽 멍석에는 으레 그들을 위한 밥상이 차려졌다. 그때, 그들은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헛간이나마 한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시절의 인심을 그리워하는 건 섣부른 낭만으로 여겨질 만큼, 너도 나도 세상도 가문 땅처럼 메말라졌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처받으면서, 조금씩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간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냥 두면 아예 깨져버릴, 금이 간 항아리들. 추위를 막아줄 따뜻한 방 한 칸이 필요했던, 동생 집의 불청객이나 지하 통로 카페 앞에 앉아 있는 저들이 바라는 건 어쩌면 세상 사람들과의 동숙(同宿)일지도 모른다.

하긴 우주라는 광막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 안식처를 찾아 길을 가는 나그네들이라고 생각하면, 잠시 길 잘못 든 이에게 따뜻한 마음의 방 한 칸 비워주지 못할 리도 없으련만 그것은 용기 없는 허위의식으로 끝나기 일쑤다. 파토스만으로 그들의 손을 기꺼이 잡기에는 열고나가야 할 문이 첩첩이고, 바로 내 앞에 정물처럼 앉아 있는 저들과의 사이는 아득한데, 무애한 바람 한 점만이 죽비되어 공허한 간극을 메운다.

 

 

2002년 ≪계간수필≫ 천료.

3인 공저 ≪한국여류수필선-동경문예관2008≫

현재 충남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