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덴 팍에서

 

장미혜

 

오랜만에 시내에 나갔다가 버스를 잘못 탔다. 토요일 오후라 한갓지게 동네구경이나 해 볼까 싶어 바로 내리지 않고 버스에 몸을 맡겼다.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며 버스는 안작 브릿지를 지나 바로 왼쪽으로 꺾는다. 집으로 가는 길과 정 반대로 향하는 버스에 오후의 햇살이 빗긴다. 고딕식 교회가 길 건너의 중세 성곽이 둘러친 테라스하우스를 건너다보기에 무작정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 ‘아난데일’이라 붙어있다. 그제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은 시드니라 불리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 평화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난데일(Annandale). 시드니 도심에서 겨우 10여 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동네. 영국에서 건너온 초기 정착민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즈음, 시드니 개항 후 50여년이 지나면서 서부로 나가던 개척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며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때부터 동네 구실을 하였던 곳 같다. 초기 이주민들과 함께 자연스레 형성된 도심의 흔적들. 1800년대의 형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이곳의 모습이 50 고개를 헐떡거리며 다다른 내게 또 다른 공간이 되어 서 있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의 비늘은 쌓여가는데. 어제를 오늘의 일부처럼 숙제하듯이 사는 내 삶도 곧 역사의 커튼 사이로 가려질 거라는 생각에 내일 기억될 오늘이 두려워진다.

핀덴 팍, 중세 성곽 모양을 본뜬 돌로 쌓여진 담장 위로 시간의 이끼가 녹청색이 되어 앉아 있다. 손으로 긁어도 융단 자국만 낼 뿐, 다시금 일어서는 모습은, 흡사 벽돌들이 태어나서 성으로 쌓인 채 백년도 더 된 손길의 흔적을 보듬고 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하다. 덕수궁 돌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덕수궁 돌담은 사람 키보다 높지만 핀덴 팍의 돌담은 겨우 어린아이 키 높이에 불과하다. 공원 안으로 슬며시 들어 온 공기는 방금 돌담 바깥을 돌아 담을 넘어 이방인을 감고 돌아서 나간다.

자그마한 동네 한 가운데 한여름 날의 저녁바람이 낮게 깔린 잔디위로 휘몰아칠 때도 공원은 그저 고즈넉하다. 이끼 낀 테이블 위에도 조그맣게 틈을 내어 대리석 조각들로 만든 체스 판이 놓여있고 두 아름도 더 될 나무들은 담 안쪽을 지키려는 듯 공원을 빙 둘러 서 있다. 예전에는 우마차가 이용했을 길을, 버스가 지나간다. 공원은 이들의 발길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들, 역사의 고풍 속에서도 새벽 산책길의 강아지들의 배설물을 치울 비닐봉지 롤이 철제 뚜껑에 닫혀 입구에 서 있다. 아주 작은 것조차도 이들은 소중하게 준비해두고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실례할 그 무엇도 틈을 주지 않는 것 같아 부럽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품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린다.

파이퍼 스트리트 노스. 아주 작은 동네라도 길마다 딸린 이름들에 우린 그곳의 역사를 짚는다. 가운데 길이 나 있어서 예전엔 파이퍼스트리트였을 텐데 지금은 그것이 사우스와 노스로 나누어졌네. 그렇다면 파이퍼 스트리트 사우스도 있겠지. 혼자서 웃었다. 공원을 나서다가 문득 조선시대 해학 하나가 떠올랐다. 어느 술을 좋아하는 한량이 너무 늦게 술자리가 파하는 바람에 순라에 걸리고 말았다. 긴 담벼락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숨을 곳이 없었단다. 뒤쫓아 온 순라꾼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담에 네 활개를 활짝 벌리고 붙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계속 담에 붙었단다. 순라꾼이 그를 떼 내려 하자, “나는 빨래요. 주인이 걷어갈 때까지 그냥 두시오.” 했다. 순라꾼이 기가 막혀 어떻게 빨래가 말을 하냐고 묻자 한량은 주인이 시간이 없어 그냥 몸을 둔 채 빨아서 그렇다고 했다는 거다.

이 벽은 너무 낮아 빨래를 널 자리가 되지 않겠지만 벽 위에 엎디어 돌멩이요 할까나. 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겉모습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 돌곽들은 2백여 년의 풍상을 안고 그 안에 머물렀던 수많은 인연들의 사연을 쓰다듬으며 특색을 주어 서 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거실 같아 보이는 집 앞 뜰의 튀어나온 부분에 달린 장식들은 손으로 주물러 빚은 것 같은 조각들이 전면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지붕들도 갖가지 재질로 서로의 기품을 뽐내는 것이 마치 그리스 시대로 돌아간 듯 우아한 석조물들의 행렬이다. 눈을 들어 한 바퀴 돌아보니 새로 지은 듯 단정한 집들이 몇 채 띄었지만 전혀 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전과 현대의 모양새가 참 잘 어울린다. 새집이라는, 신식이라는 이미지가 들지 않게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는 양, 자연을 보듬고 세월을 품으며 시간을 넉넉하게 해 주는 서로의 모습들이 일상에 지친 도시인의 발걸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전화기의 진동이 울린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는 신호다. 아직 눈은 2세기 전에 머물고 있지만 발길을 돌리는 내 신발은 현대인의 그것이다. 때론, 우리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내지만 한낱 돌담에 낀 이끼보다 못함이라. 석축에 걸린, 시간을 잊은 세월의 때가 공원을 떠나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바람에 나뭇잎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가 날아간다. 그것을 따라 나도 일어섰다.

 

 

≪수필문학≫(2003년)으로 등단.

공저: 호주 시드니 수필동인지 제 7집 등.

현재, 호주문학 수필분과 회원. 호주 한글학교 교사.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