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지난 3월 일본에 쓰나미가 덮쳐 예약했던 일본여행을 취소해버린 후, 짝은 아무데도 못가고 날짜만 지나가는 것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인생 속도가 60킬로 후반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나마 건강할 때 어디든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큰딸이 아빠 생신을 맞아 여행비 명목으로 얼마간의 돈을 입금시켜주었다. 여고동창이 자랑하던 명품핸드백 값도 안 되는 액수지만 가진 그릇이 작아 조금만 담아도 가득 채워져 우리는 금방 행복해졌다. 더워지기 전에 부산, 통영, 외도에 가는 남해안 기차여행을 예약했다. 나는 수학여행 가는 아이에게 새 옷을 마련해주듯 짝에게 점퍼, 티셔츠, 바지를 풀세트로 구입하여 멋 내기를 해줬다. 남자의 늙음은 마음에서 오고 여자의 늙음은 얼굴에서 온다더니, 분홍색 티셔츠에 점퍼를 입고 거울 앞에서 앞태를 보았다가, 뒤태를 보았다가 하는 모습이 꼭 애인을 만나러 가는 큰아들 같았다. 나도 예쁘게 화장을 했다.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도록….

KTX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 만에 도착해보니 부산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 옆에 각지에서 예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우리 옆 좌석에 처음 만난 듯한 두 아가씨가 짝이 되어 앉아 있었다. 부모 벌 되는 관광객들 속에 남자친구도 아닌 짝과 앉아 있는 두 아가씨가 측은해 보였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직장 동료들은 나를 올드미스의 반열에 올려놓고 “언제 시집가느냐”고 다그치곤 했다. 그들은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돈을 모아야 시집 갈 형편이었던 터라 결근 한 번 없이 굳세게 출근하는 내 꼴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총각사원이 짝을 만나 결혼을 할 때마다, 내 울타리에 기둥 하나씩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허전했다. 그때마다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들기 전에 짝을 찾고 싶어 속으로는 안달이 났다.

총무과 사무를 보다가 심심하면 사원들의 인사카드를 몰래 훔쳐보며 관심이 가는 총각사원을 발견하면 의도적으로 사무용품을 더 챙겨 준다든가, 귀빈실 접대용 커피를 타서 슬쩍 책상에 놔두고 구내전화로 커피 값을 받으러 가겠다며 장난을 치는 짓 따위로 알짱거리기도 했다.

“미스 김, 이 리스트 타이프로 쳐줄 수 있으세요?”

신입사원 명문대출신 K였다.

“암요, 해드리고 말고요.”

겉으로는 업무가 바빠 쉽지 않은 척했지만, 이 신입사원의 신상명세를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얼마든지 기분 좋은 부탁이었다. 총무과 일도 아닌 K의 리스트 작성을 연장 근무까지 하면서 여러 날 도왔다. 이 일로 인하여 K와 커피를 마신다거나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K는 점점 나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내 짧은 낚싯대에 비해 너무 큰 고기가 낚인 것 같았다. 힘이 달려 끙끙대면서도 붙잡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고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끊어져도 손 털고 돌아설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K의 여동생이라며 퇴근 후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기죽지 않고 의연하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커피숍에 들어서자 나를 알아본 K의 여동생이 다가와 중년부인 둘이 앉아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정갈하고 인상이 좋은 부인이 직감적으로 K의 어머니 같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세련된 차림의 젊은 부인이 눈빛을 꼿꼿이 세워,

“결혼상대는 비슷해야지 너무 차이나면 서로 불행해요. 우리 조카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만 끝내는 게 좋겠어요.”

한방에 딱지를 놓았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며칠 동안 기분이 처져 지내는 나를 지켜보던 직속 과장님이,

“어떤 놈이든 미스 김을 데려가면 잘살 거야!”

하며 나를 위로해 줬다.

그 어떤 놈이 지금의 짝이다. 짝은 나를 소개받자마자 맏며느릿감으로 딱 좋은 인상이었는지 흡족한 표정이었다. 어렸을 적 별명이 풍년두부였던 허옇고 통통한 살집이 한 몫을 해낸 듯했다.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언감생심 대한민국이 신체 보증하는 ROTC 출신을 만나 짝이 되었다.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는 부산 시내를 벗어나 바닷가에 위치한 용궁사에 관광객들을 내려놓았다.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요란하게 법당까지 들랑거려 불자가 참선하는데 방해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보조를 맞추어 걷고 싶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짝은 어느새 저만큼 가이드 뒤를 좇고 있었다.

짝은 처음 만나 데이트할 때에도 내가 불편할 정도로 걸음이 빨랐다. 지금도 걸음걸이가 빠르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구경을 다니다가도 벤치만 있으면 앉아 쉬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

누가 봐도 우리는 오래된 짝이었다. 겉으로는 다정히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다. 소탈하고 착실한 사람이지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게 답답했다. 사업을 하며 채무에 시달릴 때에도 내색을 하지 않고 혼자서 고민을 했다. 그럴 때마다 앞을 가로 막고 싸움을 걸었다.

가끔은 엎어지든 뒤집어지든 우지끈 부러지는 남자와 짝을 바꾸고 싶었다. 내 짝도 그랬을 것이다. 고분고분하게 내조를 잘하는 여자와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나쁜 것을….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외도에 내린 일행들은 정원의 숲속 갈림길에서 각기 짝을 이뤄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짝은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는 외도에 왔는데도 별로 감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가파른 꽃길을 따라 오르다 벤치에 앉아 쉬었다. 저 아래 선착장에서는 관광객을 풀어놓은 유람선이 관람이 끝난 사람들을 배에 싣고 망망한 바다를 향해 떠나고 있었다. 마치 외도라는 세상을 살다가, 때가 되어 요단강을 건너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는 듯했다.

영원한 이별을 생각한다. 오래 길들여진 짝이 어느 날 허무하게 사라진다면 내 인생의 반도 따라 무너질 것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잔소리하고 싸우면서도 항상 옆을 지켜주는 짝이 있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에세이스트≫ 등단(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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