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친구

 

이종화

 

평택에서 군복무를 할 때다. 내가 지내던 방은 숙소의 일층에 있어 편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침 운동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는 나에게, 출근을 앞둔 이삼십 분의 여가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달콤한 아침잠 시간이었다. 출근 시간 임박해 방을 나선대도 일층에 사는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시간만큼을 아껴 잠을 더 잘 수 있는 이점을 누렸다. 퇴근할 때도 계단을 올라가는 만큼의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난 그렇게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아껴둔 힘으로 전투화도 손질하고 군복도 다듬었다. 뿐만 아니다. 부대에서 전달 사항을 늘 일층 칠판에 공지하기에, 난 새 소식을 수시로 접할 수 있었다.

헌데, 여름이 되면서 귀찮은 일이 생겼다. 날씨가 습하고 무더워지면서 제멋대로 창궐한 벌레들이 가까운 일층부터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측컨대, 건물 앞 잔디밭에서 부화한 적지 않은 수의 벌레들이 문틈으로 잠입하여 버젓이 기거하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애완곤충도 키우는데, 그까짓 벌레 몇 마리쯤이야 하며 그냥 두었던 게 그 개체수가 급증하여 급기야 ‘사람의 방’ 아닌 ‘곤충의 방’에 사람이 붙어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소위 ‘충우(蟲友)’라 하여 ‘곤충과 친구들’이란 앳된 이름의 곤충 애호 단체도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은 바 있다. 한때 인기를 모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서태지가 중심이 된 것이듯, '곤충과 친구들'은 분명 곤충이 주가 된 단체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파브르도 아니요, 살생유택(殺生有擇)을 신조로 삼는 신라의 화랑도 아닌 내게, 곤충을 보호하고 아낄 의무는 없었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아래로 발을 딛었을 때, 무언가 간지러운 느낌으로 전달되는 생명의 움직임이, 불을 밝히는 순간 지네나 쥐며느리의 가녀린 발버둥이었다는 것은, 너와 나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그랬다. 우린 그렇게 공존해서는 안 되는 운명이었다. 너희는 밖에서 나는 안에서 살아야 했고, 나는 밖으로 나가도 되지만 너희는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는 것이었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전달되는 기(氣)를 느끼기에 너희는 너무 미미한 존재였고, 난 스스로 너무 우월했다. 그래서 난 곤충들을 나의 적으로 삼아 척결하기로 했다.

그래 며칠 동안, 겁도 없이 내 방을 종횡무진하는 곤충들을 쭉 살펴보았는데, 실로 다양한 녀석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바닥엔 어릴 적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구경하는 집게벌레를 비롯하여, 다리가 몇 개인지 셀 수 없는 지네, 가까이 가면 다소곳이 걸음을 멈추는 쥐며느리, 나에게 애원하듯 두 다리를 모으는 손가락만한 사마귀, 밤마다 울어대며 암컷을 찾는 귀뚜라미까지 살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쥐며느리와 같이 차마 곤충이라 부르기 어려운 소위, 절지동물도 있었지만 모두 ‘벌레’란 넓은 부류에 포함하기로 했다. 공중에는 파리와 모기, 큼직한 나방들이 마음껏 비행하고 있었다. 거기다 천장구석에 집을 짓고 밧줄을 타고 내려와 함부로 땅을 나다니는 거미까지, 그 무리에 섞여 지내던 나 역시 곤충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신사적인 방식으로 제거하기 위해 나는, 방문의 틈새를 메우고 두 종류의 약을 구해 보이는 대로 뿌리며, 그들이 고요한 죽음의 시간을 맞도록 했다. 가장 맘 아팠던 것은, 암컷이 있을 리 없는 내 방에서 애처롭게 짝을 찾다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최후를 맞이한 ‘귀뚜라미 군(君)’의 죽음이었다.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귀뚜라미 울음은 잠을 청할 때마다 여간 방해가 되지 않았다. 기실 고민을 좀 했다. 짝을 찾기 위해 울어대는 생명의 본능을 정녕 탓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임을 기다렸을 귀뚜라미에게 사랑스런 암컷 대신, 나라는 수컷이 주는 죽음의 약이 귀뚜라미 군의 순수한 두 더듬이에 드리워질 게, 군의 입장에서 너무 기막힐 것만 같았다. 귀뚜라미는 연약할 것이었다. 죽이기 위해 굳이 많은 약을 먹이지 않아도 족했고, 죽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 또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귀뚜라미만큼은 죽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사경(四更)까지 구슬피 짝을 찾는 귀뚜라미는 여전히 잠자리를 방해하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 난 군(君)에게 약을 조금만 주었다.

일주일 내내 보이는 대로 벌레에게 약을 뿌려대자, 나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유유히 걸어 다니던 녀석들이 나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퇴근을 하고 방에 돌아오면, 으레 나의 입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침대 밑에서 서랍장 밑으로 짝을 이뤄 나란히 걸으며 산책을 즐기는가 하면, 말없이 거미집을 짓는 일에나 열중하며 먹이 찾기에만 분주했다. 사람이 우습게 보였는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긴장하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허나, 고 며칠 못살게 굴었더니 언제부터인가 날 보면 재빨리 피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문 쪽으로 의자를 두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잠시 외출을 나갔던지 지네 한 마리가 문틈으로 들어오다 날 물끄러미 치어다보더니, 들어왔던 그 구멍으로 다시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미처 메우지 못한 틈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지네는 영영 들어올 수 없었다. 그렇게 난 그들과 적이 되고 말았다.

세상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함께 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각자의 본능을 좇아 각자의 삶을 살아갔지만, 그것이 공존할 수 없는 유일한 이유가 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인지도 몰랐다. 두 개의 원을 포개어, 포개어진 부분에 열심히 빗금을 치고 “우린 이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거야.”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 영역이 사글세 단칸방이든 웅장한 성(城)이든, 공존을 바라는 생명들은 그 공간을 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해야 했다. 아담이 이브가 건넨 사과 한 입을 베어 물지 말아야 했듯, 우리의 삶엔 현상의 유지를 위해 넘어선 안 될 금기(禁忌)의 공간이 존재했던 것이었다. 어린 시절, 짝꿍과 금을 긋고 사이좋게 나누어 쓰던 오래된 책상에서 난 그걸 발견했고, 청년이 되어 곤충과 공존의 틀을 부수며 그 사실을 확인했다.

생(生)은 교집합을 찾는 과정이었다. 교집합의 범위가 무한히 넓어 A집합과 B집합이 꼭 하나로 포개어질 수도 있고, 그 공통의 분모를 찾지 못해 A와 B는 영영 다른 개체로 생을 마쳐야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두 생명은 만나면 서로의 교집합을 찾았고, 계속 만나며 그 영역을 넓혔고, 헤어질 땐 그 자국만을 남긴 채 두 개의 다른 집합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생이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면, 만남과 이별 사이는 저 교집합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졌다.

한 곳에서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다시 사오 십년을 기다려야 하듯, 그런 만남은 긴 시간 끝에 잉태되는 것이었다. 운이 나쁘면 평생토록 태양과 달의 조우(遭遇)를 보지 못하듯, 일생을 통해 합당한 인연을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자연의 섭리였다. 더욱이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서로 만났다 한들, 그것은 실제로 태양과 달이 포개어져서가 아니라, 단지 태양에 의한 달의 그림자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음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 날, 난 그렇게 많은 개체들과 짧은 인연의 끈을 끊었다.

 

 

≪계간수필≫로 등단(2006년). 한국산업은행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