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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 속의 나비

 

임혜숙

 

날개 패인 나비, 눈물에도 젖지 않는 나비, 밀어내기만 했던 그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내 몸과 하나가 되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는 내 눈 속의 나비가 있다. 화창한 날에는 더 많은 나비가 날아들 뿐이다.

따사한 봄볕이 행여라도 사라질까 옆 집 K와 함께 봄날 산책에 나섰다. 공원에는 나른한 오리들만 호수 위를 한가로이 떠돌고 있었다. 금실 달린 버드나무 밑을 돌아 나오니 오후 햇살이 더 푸르게 비쳐졌다. 하늘을 바라보던 K는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몇 년 전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시꺼먼 것이 딱 들어 앉아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나이 먹어서 그런 거니 어쩔 수 없다, 수술도 할 수 없다, 그냥 지내라 했지만 시력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충격은 가시지 않아 결국은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다고 했다. 그도 나처럼 나비를 담고 사는 사람이었다.

몇 년 전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시야에 무엇인가 검은 물체들이 어른거렸다. 거미줄 같기도 하고 연기 그을림 같기도 했다. 가슴이 순간 멈춘 듯했다. 이러다가 실명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운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비문증(飛蚊症)입니다.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나이 먹어서 오는 증상이고 더 나빠지면 다른 조치를 취하지요"

며칠 동안 가슴만 태우던 나의 마음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의사는 잔뜩 겁에 질려있는 나에게 단호한 한 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비문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우울한 날은 계속되었다. 죽고 싶었다. 회복의 가능성은 있는 것인지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런 저런 상념으로 충격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하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세상 밖의 무엇과도 소통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안에만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내게 쉽게 희망을 주지 않았다.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한 우매함을 탓하기도 하고 그 동안 일에만 욕심을 내온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후회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변해갔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는 젊은 시절부터 병을 달고 살아온 친정 엄마에게로 투사되어 갔다.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형질만 타고 났는지 어린애 같은 투정만 해댔다. 결국 숱한 부정적 감정과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은 두통을 불러오고 급기야는 불면증까지 앓게 되었다. 생리적인 눈의 문제보다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더 심각한 상태였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갱년기의 또 다른 증상을 머리로는 인정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 M은 어느 날 나를 무조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오후 햇살을 받아 롱 비치(Long Beach)의 바다 물줄기가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한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 그녀는 내게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그대가 늙어서 머리 희어지고 잠이 많아져 난로 옆에서 꾸벅일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라, 그리고 그때 그대의 눈이 지녔던 부드러운 눈매와 깊은 그늘을 꿈꾸어라……’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은 날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떠나보내고 지나온 날의 추억과 그리움으로 살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조금은 서글프면서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시였다. ‘그래 이제 너도 나이를 먹은 거야. 슬픈 일이지만 받아 들여야 돼.’ 어둠 속에 잠겨가는 강물이 나에게 속삭였다. 이젠 내 삶의 현실과 화해해야만 되는 시간이 온 것 같았다.

내 자신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육체의 노화는 스스로가 살아온 흔적이기에 겸허하게 수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문처럼 되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물건이 무엇 하나라도 있는가? 그저 내 육신이 유일한 물건 아니었던가? 몸 하나 가지고 몇 십 년을 쓰다 보면 당연히 손때 묻고 흠 나고 고장 나는 것 아닌가? 내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늙는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었다는 충격에서 벗어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렇게 크고 빛났던 눈망울에도 세월의 그림자가 그늘지는데, 마음의 눈에는 어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까? 세상을 비딱하게 바라보는 마음의 사시는 되지 않았는지, 주변의 걸림돌 때문에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착시현상 속에 살아온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눈의 노화를 무서워했던 것처럼 내 마음의 노화도 두려워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의학적인 그 어떤 설명보다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친구, 이제 그녀는 너무 멀리 살고 있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내 몸의 일부가 된 내 눈 속의 나비, 훨훨 밖으로 날아가기를 희망해 보지만 세월 따라 무게만 무거워진다. 이제는 그 무게만큼 내 마음의 나이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만큼 넉넉한 마음의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봄날 내가 받은 보시(布施)의 고마움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나이를 먹고 싶다. 봄 꽃 피워대는 화사한 봄볕 탓인지 나비들이 더 많이 모여든다. 눈을 감는다. 숨바꼭질 하는 듯 나비들도 어딘가에 숨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