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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이양선

 

아버지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고향집에 들렀다. 호두나무 그늘 밑에서 양은솥에 불을 지피고 있던 친족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깜짝 반긴다. 내가 아궁이 앞에 앉자 칠순의 어머니가 나를 밀어내고는 대신 앉는다. 할머니가 부지런한 사람은 역시 불길도 알아본다고 한 마디 거든다. 부지깽이로 불길을 돋우던 어머니가 솥에서 김이 오르자 불붙은 부지깽이를 능숙하게 재속에 묻어 비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주 땔감은 왕겨였다. 오른손으로 풀무를 돌려 바람을 일으키면서 왼손으로 왕겨를 아궁이 속에 넣었다. 원통형 관을 통한 바람이 불길을 돋우면 그때부터 부지깽이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타버린 재는 조금씩 밀어내고 새로 들어오는 왕겨를 도도록하게 올려주는 일에 쉴 새가 없었다. 그래야만 불꽃이 잘 타올라 쇠죽이 끓었다.

왕겨가 없을 때는 생솔가지를 때기도 했다. 생솔가지는 잘 탈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다가도 걸핏하면 꺼지기 일쑤였다. 아궁이는 금세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불씨마저 사위어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부지깽이 끝에 간신히 남은 불씨로 불길을 살려야 했다. 눈물과 기침과 콧물이 범벅되어 씨름하다 보면 부지깽이는 제 몸을 태워 불꽃을 소생시키는 마술지팡이가 되곤 했다.

어머니 손에 들린 부지깽이가 몽당해졌다. 불과 한살이 되어 자신을 소진시킨 부지깽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불현듯 부지깽이 역할이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키가 작아진 어머니가 등이 말린 채 앉아있는 모습에 잔잔한 소용돌이가 인다. 드물게 좋은 사위를 봤다고 동네가 떠들썩한 지 막 두 해가 지난 즈음이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어머니는 그 셋째 사위를 잃었다. 갓 백일 지난 아기를 안은 아우는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했다. 서울 아들집에 계시던 어머니는 한달음에 내려와 아우 곁에 머물렀다. 사별이 아무리 서러워도 살아야 아기를 돌본다며 셋째 딸의 손과 발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식의 절망 앞에 어머니는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아기 바라지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딸이 의연히 일어서기를 바라는 어머니는 아우의 눈길을 피해 숨죽인 눈물바람이 잦았다.

아우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에 내게도 어려움이 닥쳤다. 육학년인 둘째가 심한 복통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남편과 큰애는 익산 집에서, 두 살 박이 늦둥이는 대전 어머니 손에, 나는 병원에서 둘째 수발을 하느라 한 계절 가까이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즈음 어머니는 협심증으로 조금만 운동을 해도 가슴 통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밤마다 우는 아이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은 예사요, 때를 잊지 않고 우리 집 식구들 밑반찬을 마련하는가 하면 날마다 요깃거리를 장만하여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예정보다 둘째의 수술이 길어져 온 가족이 벼랑 끝에서 안절부절 할 때, 밤낮없이 우리의 뒤를 돌보며 비손하며 지낸 날들이 또 얼마일까. 어머니가 안계셨다면 어떻게 그 터널을 빠져 나왔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누구나 삶의 굴곡을 피해갈 수는 없나보았다. 십여 년 후 창졸간에 쓰러진 형부의 수술과 재활 치료로 언니는 한동안 정신 줄을 놓았다. 재기(再起)가 불투명한 현실 앞에 해가 뜨고 지는 것마저 서러웠다. 오른팔이 꺾인 사업장, 기약 없는 병상생활과 아직도 학업 중인 두 조카. 신은 한쪽 문을 열어놓지 않고는 절대로 다른 쪽 문을 닫지 않는다던데 어느 한 곳도 희망의 끈을 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 또다시 분연히 일어섰다.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상실한 자식 앞에 못할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언니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디딤돌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언제 일어설지 모를 맏사위와 그로 인해 절망에 허우적거리는 큰딸이 안쓰러운 어머니의 한쪽 가슴에는 생인손 하나가 덧붙었다.

반평생 가까이 가슴앓이를 할 때마다 자식들이 십자가처럼 무거웠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재가 될지언정 불길을 살리기 위해 불구덩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부지깽이는 어머니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불을 다 땐 어머니가 천천히 일어선다. 아궁이 주변을 쓸고 부지깽이를 한 쪽에 세운다. 허리를 폈으나 굽어 낮아진 키는 몽당해진 부지깽이와 닮아 있다. 그동안 이고 져온 자식들의 짐 때문인 것만 같다. 짐 중에 자식 짐이 가장 무겁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나는 그 모습이 자못 숙연하다. 봉양을 받기에도 너무 기운 세월, 이제 자식들의 십자가를 그만 졌으면….

아궁이 속에서 점점 사위는 불씨가 소멸되어 가는 어머니의 세월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